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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의 Credit이 필요한 이유

브랜드비 웹사이트가 오픈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어요. 지난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브랜드비를 만든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저희 브랜드비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인데요, 기본적인 브랜드 정보는 보도자료나 기업과 에이전시의 웹사이트,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모으고 있습니다만,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의 정보는 얻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에이전시들이 참여한 크리에이터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구요, 지인찬스를 통해 요청해 보아도 함흥차사더라고요. 수십년 간 비공개로 처리했던 관행이 있어 바로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브랜드비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갈 꺼예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을 되새겨 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Credit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얘기해보려고 해요.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 때 About 페이지에 구구절절 적어놓기는 했는데요,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아서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요. 사례들은 제 경험담을 기반으로 작성했으나, 여러분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기 위해 추측성 내용 및 약간의 허구와 과장이 들어가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Credit이란?

먼저, 용어 정의부터 시작할께요. Credit 하면 대부분 신용카드를 떠올릴 텐데요, 제가 말하는 Credit은 영화가 끝날 때 나오는 End Credit과 연관이 있어요. 영화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참여하여 만들어지게 되는데요, 세부 업무와 담당자들의 이름을 기입하여 영화 말미에 보여줍니다. 대부분 엔딩크레딧이 나오자마자 바로 자리를 뜨기 마련인데요, 간혹 다음 시리즈 소개나 쿠키영상을 엔딩 크레딧 후로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억지로라도 보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이는 주연배우처럼 외부에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은 수고와 노력을 들여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이 Credit이란 단어 자체가 '신뢰'의 의미가 깔려 있는데요, 신뢰는 기본적으로 '이름'을 걸고 일을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사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1. 기획자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변신이 가능할까?


A씨는 대형 브랜딩 에이전시의 기획팀 소속이었어요.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세부 브랜딩 업무 별로 여러 팀이 존재했고 기획팀은 주로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했죠. 클라이언트 문의에 응대하고, 회사소개서와 견적서를 전달하는 수준이었어요.(먼저 올린 'R&R로 알아보는 브랜딩 프로스세스' 글을 참고하세요) 업무 제안서조차 직접 작성하지 않았는데요, 브랜딩 개발 업무를 하는 각 팀에서 내용을 작성하면 모아서 하나의 문서로 만들어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는 것에 불과했어요. 1년에 수십개의 프로젝트가 운영되다 보니 효율성을 위한 업무 세분화로 볼 수 있죠. 이러한 기획팀에 요구되는 가장 큰 사항은 처음 접하는 클라이언트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키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인데요, A씨는 이를 매우 훌륭하게 수행했어요. 그녀의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가 한 몫을 했거든요.

그렇게 수년 간 경력을 쌓아 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A씨,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조직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대표가 바뀌고, 모든 CD들이 퇴사를 해버린 거예요. 시니어 디자이너가 있긴 했지만, 개발 업무에 집중해왔기에 클라이언트 응대나 프리젠테이션은 무리가 있었죠. 그래서 회사는 A씨를 과감히 CD의 자리에 앉힙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사실 클라이언트들이 오피스를 방문해서 직접 디자인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최종 결과물만 보고를 받기 때문에 CD가 프로젝트에 얼마나 깊게 관여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어요. 또 프리젠테이션 내용은 실무 디자이너들이 다 만들어주니, 유창한 말솜씨와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실력이면 충분했죠.

에이전시의 유명세와 훌륭한 외모로 언론사 인터뷰도 진행하고, 어느 새 그녀는 업계에서 유명한 브랜딩 CD가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A씨는 기획자에서 CD로 성공적인 커리어 변경을 하게 된 경우인데요, 단 한 번도 마우스를 쥐고 로고 디자인을 해보지 않았던 그녀가 CD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녀의 핵심 경쟁력은 디자인 실력과 브랜딩 전문성이 아니라 훌륭한 외모와 클라이언트 응대 능력이니까요.




2. 회의만 참석했는데, 브랜딩 디렉터라고?


B씨는 대기업의 차장이었어요. 브랜드나 디자인과 별로 관련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열렬한 팬으로서 잡스의 디자인 경영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죠. 그런데 어느날, 회사에서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고, CI를 개발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그 큰 조직에 브랜딩이나 디자인을 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회사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그나마 디자인을 알고 있는 것 같은 B씨를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게 됩니다.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리하는 담당자는 따로 있었어요. B씨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회의에 참석해서 디자인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사실 스티브 잡스를 통해 디자인을 접한 B씨가 실질적인 CI 디자인 개발과 프로세스에 대해 얼마나 알겠어요? 회의 참석자로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만 있다 갈 수는 없고, 억지로나마 의견을 내야 하는데 비 전문가다 보니 주관적 내용에 치우쳤죠. 또 초보자가 의견을 낼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 중 하나가, 무조건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정적 의견을 내야 의미가 있고, 에이전시가 더 좋은 디자인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예요. 그래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는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B씨를 매우 싫어했어요. 항상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그것조차 '내가 보기엔 별로야, 맘에 안들어' '왜 애플처럼 못해?' 정도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 수준이었으니까요. B씨도 에이전시가 디자인을 못한다며 윗선에 불만을 보고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원활히 진행되어(중요! 여기서 B씨의 역할이 매우 미미했음을 알 수 있어요.), 성공적으로 CI가 런칭됩니다. 새로운 자회사도 승승장구하며 업계의 아이콘이 되었어요. B씨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근거로 자회사의 디자인 센터장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요, 브랜드가 유명해짐에 따라 CI 개발 스토리에 대해 강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게 됩니다. B씨는 디자인 센터장으로서 당당하게 강연장에서 "이 CI 디자인은 내가 주도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강연장에 직접 개발한 디자인 에이전시의 디자이너가 있었던 것이죠. 디자이너는 B씨를 기억도 못했는데요,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가 모든 브랜딩 과정을 디렉팅했다고 하니 무척 화가 났죠. 그런데, 강연 주최측에 항의할 수도 없고, 클라이언트에 정정을 요청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죠. 디자이너는 본인의 회사, 즉 디자인 에이전시에 불만을 토로했으나 에이전시도 딱히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어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클라이언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B씨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 센터장으로 자리잡고, 브랜드 개발의 주역으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조직 내에서도 그의 능력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요, 특히 브랜드나 디자인에 이해도가 깊은 사람일 수록 B씨가 디자인 센터장이라는 것에 놀라워했죠. 그럼에도 B씨의 자리는 굳건했어요. 경영진은 B씨가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CI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이력이 그의 전문성을 이미 검증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3. 외국인 인턴이 디자인 개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C씨는 브랜딩 에이전시의 시니어 디자이너였어요. 디자인에 대한 열정으로 종종 오피스에서 밤을 지새우며 디자인을 했는데요, 이를 기특하게 여긴 CD가 개인적 인맥으로 C씨를 해외 브랜딩 에이전시에 6개월간 인턴으로 보내주었어요.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정보가 현저히 부족했고, 해외 에이전시 경험은 정말 모든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것이었기에, C씨는 시니어 디자이너임에도 인턴 업무를 수행했죠. (사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인턴 이상의 역할은 할 수 없었을 꺼예요.) 그런데 이 해외 에이전시의 주요 클라이언트 중 하나가 매우 유명한 글로벌 SW기업이었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제품 출시와 함께 감각적인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C씨가 인턴을 수행할 당시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이 개발되고 있었는데요, C씨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턴 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C씨는 은인이자 스승인 CD가 새로 창업한 디자인 에이전시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해외 에이전시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사와 인터뷰하는 기회가 생겼는데요, 이 때 글로벌 SW기업의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이 바로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해요. 사실 이 내용은 그 누구도 검증을 하지 않았어요. 당시 환경에서 언론사 기자가 해외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C씨가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맞냐, 어떤 역할을 수행했느냐를 확인할 수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죠. 오롯이 C씨의 이야기에 기반한 인터뷰 기사가 배포되었고, C씨는 단번에 글로벌 SW 패키지를 디자인한 한국인으로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디자인을 직접 해보면 아시겠지만 "아이디어=디자인"의 공식은 설립하지 않아요. 하나의 디자인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도 수십 개, 수백 개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그 중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캐치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CD의 역할이자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다듬어 완성도를 높이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트 디렉터와 시니어 디자이너의 역할이구요. 브랜딩 개발의 실무자 입장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면 기업의 회장님이 "로고에 꽃이 들어갔으면 좋겠어"라는 의견을 내서, 이를 반영한 CI 디자인이 만들어졌을 때 당연히 회장님은 "내 아이디어로 만든거야"라고 말씀하시겠죠? 틀린 말은 아니예요. 하지만 회장님이 디자이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 이후로 C씨는 승승장구해왔어요. 대형 브랜딩 에이전시의 대표를 역임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인턴 활동을 했던 그 해외 에이전시와 공동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죠. C씨의 회사 직원들은 대표님의 스토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해외 에이전시에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어요. "우리 대표님이 예전에 너희 회사에서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했어." 그런데 해외 에이전시의 반응이 당황스러웠죠. "그래? 우리 회사에서 일했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모르지?" 당연한 일이죠. 수십년 전,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인 인턴 디자이너를 누가 기억하겠어요? 당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디자이너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도 아니구요. 비즈니스 관계 때문에 C씨의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해외 에이전시는 추가로 코멘트했죠. "인턴으로 일했다니 우리가 인연이 있네. 안타깝게도 당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지만." C씨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고 합니다.




4. 오해가 만들어 준 유명세,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건가요?


D씨는 제품 디자이너였어요. 가전, 생용용품 등 하드웨어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한 대기업의 디자인실 실장으로 이직을 했죠. 이 대기업은 획기적인 CI 디자인으로 시작하여,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브랜딩, 디자인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이 기업이 제품 디자이너를 디자인실 실장으로 뽑은 것은 CI개발이 완료되었고, 향후 제품 디자인 중심의 실험적 브랜딩 프로젝트를 운영하기 위함이었어요. 실제 이 회사의 CI 디자인을 총괄했던 전임자는 퇴사하여 별도의 디자인 회사를 차렸는데요, 우연히도 D씨와 이 전임자의 이름이 매우 유사했던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당연히 형제라고 생각할 정도의 이름이었죠. 설상가상으로, 같은 디자이너여서 그런지 둘의 외모나 패션 스타일링도 비슷했어요. 그래서 D씨를 전임자로 오해하고 브랜딩 관련 인터뷰나 강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죠. D씨는 이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았어요. 현재 회사에서 디자인 실장을 역임하고 있고, 브랜딩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제품 디자인도 '브랜딩'의 일부분이니까요.) 그래서 한동안 도플갱어처럼 두 명의 디자이너가 "이 회사의 브랜딩은 내가 했어" 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인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 명'으로 인지했어요. 전임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화가 날만 하죠? 그런데 도용이라고 하기엔 브랜딩의 범위가 광범위해서 모호한 점이 있고, 일을 수주하는데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니니 난감할 따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두 명이 동시에 홍보를 하고 다녔으니 인지도를 넓히는데 기여한 바가 있다고도 할 수 있죠.

시간이 흘러 D씨는 퇴사를 하고 전임자처럼 디자인 에이전시를 설립했는데요, 제품 디자이너였던 D씨가 어느새 브랜딩 전문가가 되어 있었어요. 회사에 의뢰하는 업무들도 브랜드 개발이 많았고요. 제품 디자이너가 브랜드 로고를 개발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브랜딩은 시각 디자인 영역이고, 제품 디자인과는 결이 달라요. 아마 D씨가 직접 디자인을 했다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을 텐데요, 이제 D씨는 대표이자 연륜있는 CD이기 때문에 직접 디자인을 할 일이 없죠. 그래픽 디자이너를 고용하면 그만이니까요.




5. 크리에이터가 일년에 수 십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E씨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신입 네이미스트로 입사하여 1년 간 근무했어요. 그런데 다닐 수록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죠. 어느 날 브랜딩 업계 다른 에이전시에서 충원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E씨는 부랴부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죠. 브랜딩 업계에서는 실제 참여한 프로젝트인 '포트폴리오'가 매우 중요해요. E씨는 자신의 능력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1년차 주니어로서는 포트폴리오 구성에 한계가 있었어요. 제대로 된 회사라면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1년차 주니어에게 맡기겠어요? E씨의 관여도가 높은 프로젝트는 몇 개 안되는 데다가, 그것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 기업의 브랜딩 사례 뿐이었죠. E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재직 기간동안 다른 팀, 다른 사람이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기입하기로 합니다. 같은 회사이기 때문에 지나가며 줏어들은 게 좀 있고, 면접 시 두리뭉실 넘기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E씨는 면접에서 보기좋게 탈락하고 맙니다. 인터뷰를 담당한 팀장이 주니어 크리에이터가 1년 동안 20여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일반적으로 네임 개발 프로젝트는 최소 1개월, 길게는 반 년 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디자인 개발은 두 배 이상이구요. 따라서 한 사람이 1년 동안 참여하고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예요. 그 많은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했다는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고, 참여했다 치더라도 관여의 정도가 아주 미미하고, 수박 겉핥기 식의 피상적 접근 밖에 하지 못했다는 얘기죠. 브랜드 개발 실력은 고민의 깊이에 따라 느는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거든요. 특히 주니어 기간에는 20개의 들러리 식 프로젝트 참여보다는 차라리 한 두개의 깊이있는 프로젝트 참여가 더 의미있어요.




위 사례들에 대해 여러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흥미를 위해 좀 극단적인 사례 위주로 모아 보았는데요, 소소한 사례까지 언급하면 너무 까칠하다는 얘기를 들을 것 같아서요.

상식을 초월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분도 있을테고, 과정이 어찌됐건 현재의 자리에 올라 잘 유지하고 있으니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꺼예요. '회사 생활에서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이미 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전자에 해당합니다. 혈기왕성하고 정의감 넘치던 어릴 적에는 무척 화가 났고, 거짓으로 이력을 만든 사람은 반드시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연식이 있으신 분들만 아시는 '신정아 사건' 처럼 경력 도용과 남용을 법이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잘못한 사람을 탓하고 벌하기 보다는, 먼저 진실하고 실력있는 사람이 더 존중받고 대우받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요. 그러기 위해서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의 Credit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누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Credit은 단순히 이름을 함께 표기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름을 걸고 일을 한다'는 전문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간접적으로 담고 있어요.

저는 진짜 크리에이터가 진심을 담아 브랜딩을 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이 탄생하고, 더 좋은 브랜딩으로 이끈다고 믿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개발했으니 좋은 브랜딩이다'가 아닌 '실력있는 사람이 개발해서 좋은 브랜딩을 만들고, 그로서 유명해진다'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만약 브랜딩에 종사하시는 분들 중, 또는 종사하지 않지만 브랜딩에 관심을 가진 분들 중, 제 생각에 공감하신다면, 브랜드비와 함께 Credit 공개하기 운동에 참여해 주세요.

내가 알고 있는 Credit 정보를 제공해 주시거나, 주변의 크리에이터들에게 Credit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적극 권장해주세요.


우리는 더 이상 '숨은 고수'의 활약은 필요하지 않아요. '검증된 고수'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지는 브랜딩 세상을 꿈꿔 봅니다.

2022 J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