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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에이전시의 업무 구성을 통해 알아보는 브랜딩 프로세스

요즘 브랜딩의 개념이 보편화되고, 디자이너들의 역량이 커지면서 기업 자체적으로 브랜딩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자사의 브랜딩 과정을 기업 홍보의 콘텐츠로 활용하는 경우도 꽤 보여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 아마 기업의 대표님들이나 임원분들이 "우리도 외주 주지 말고 자체적으로 개발해 보는 게 어때?" 라고 생각하시게 될 것 같아요. 원론적으로는 브랜딩 작업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게 맞아요. 내부 구성원들의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통의 미래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디자이너 한 명, 또는 기획자 한 두 명으로 초간단 초스피드 개발을 하려는 데서 발생해요. 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지, 브랜딩 에이전시의 팀 구성과 각 역할을 통해 브랜딩 프로세스를 살펴보고, 그 원인을 알아보아요.




1. 보편적 브랜딩 에이전시의 팀 구성을 알아봅시다.


사실 브랜딩 에이전시 종류가 워낙 많고 다양해서 '보편적'이라는 기준이 모호할 수 있어요. 특히 요즘은 조직의 규모가 초대형화 아니면 초소형화 되는 양극화 성향이 있어서, 저조차도 평균적인 브랜딩 에이전시 규모가 궁금하더라고요. (아무도 통계조사를 하지 않아서 알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 경험에 미루어, 일반적으로 많이 진행하는 브랜딩 업무를 수행하는 브랜딩 에이전시를 '보편적 브랜딩 에이전시'로 설정해 봤어요. 제가 몸 담았던 다수의 브랜딩 에이전시들의 팀 구성이구요, 우리 나라에서는 나름 중대형 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크게 4개의 팀으로 구성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원칙적으로 말하면 사실 3개의 팀이예요. 세번째 디자인팀과 네번째 응용디자인팀의 경계가 모호하거든요. 굳이 한 개의 팀을 더 추가한 것은 해외 브랜딩 에이전시 및 트렌드를 감안해서예요. 이 부분은 팀 설명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께요.




2. 브랜딩 에이전시의 첫인상, 기획팀


브랜딩을 개발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클라이언트가 가장 먼저 컨택하는 사람이 기획팀이예요. 물론 C레벨에서 바로 컨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C레벨끼리 이야기가 되었어도 실제 진행은 실무자 선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기획팀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광고대행사의 AE와도 역할이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 기획팀이 하는 업무를 살펴 볼까요?



기획팀의 아이콘을 '귀'로 설정한 것은 핵심 역할이 '잘 듣는 것'에 있기 때문이죠. 클라이언트의 니즈와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캐치한 후 에이전시 내부 구성원에게 잘 소통을 해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기획자의 역할이 마치 '통역자'와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클라이언트들의 비즈니스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있어서, 크리에이티브 집단인 에이전시 내부 구성원들이 잘 이해를 못 하거나 오해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겨요. 네? 에이전시 구성원의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요? 제가 '통역자'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단순 의미 해석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해요. 예를 들어볼께요.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처음엔 "우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브랜딩을 원해" 라고 하지만, 그 말 그대로 "혁신적, 창의적" 네임이나 로고 디자인을 들고 가면 대부분 이런 피드백이 돌아와요. "... 우리가 말한 혁신과 창의는 그게 아니었어요. 너무 Too Much 예요." 각 클라이언트 별로 비즈니스 환경이 다르고, 조직 문화도 달라요. 그래서 같은 단어라도 콘텍스트가 중요하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와 그 정도를 정확히 캐치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자가 여러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상황 별 콘텍스트 이해도를 높이고, 부가적으로 클라이언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러한 내용들이 심화 발전되면 브랜드 전략 수립까지 할 수 있는 기획자로 거듭나는 것이죠.

그런데, 옛날 에이전시들의 기획팀은 정말 기본적인 AE와 PM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위 그림의 Must 업무만 담당하죠)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물리적으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악으로는 제안서 내용 따로, 실제 브랜드 개발 내용 따로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3. 브랜드 전략부터 개발, 상표지식까지 필요한 네이밍팀


신규 브랜드 개발 시 첫 단계가 바로 네임 개발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기획팀의 업무 범위가 축소된 경우는 네이밍 팀이 브랜드 분석, 리서치, 전략 수립을 담당해요.


브랜드 네임을 흔히 Verbal Identity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래서 네이밍팀의 아이콘을 '입'으로 표현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네이밍 팀 업무가 가장 넓다고 볼 수 있는데요, 기획팀의 역할을 분담할 뿐 아니라 네임 개발(Creation), 상표지식을 바탕으로 한 상표 검색까지... 전략적인 사고를 하다가, 크리에이티브한 사고로 전환하고, 또 단순반복 업무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게 그냥 보기엔 쉬워 보여도 실제 해보면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사람의 성향이 있잖아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성향과 엉뚱 기발한 성향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 쉽습니까? 또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 단순반복 업무를 하는 것은 정말 정신적, 감성적 괴로움이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네이밍은 반드시 최소 2명, 긍정적으로는 3명 이상이 팀을 이뤄서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는 개발 단가가 너무 낮아서 1인 1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네이밍 개발 업무가 너무 고되어서 경력을 쌓다가 중도이탈하는 경우도 많아서, 최근에는 상표법도 잘 모르는 1~2년차 주니어가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고 해요. 이런 경우는 프리젠테이션만 하는 별도 인력이 따로 있어서 클라이언트로서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요. 클라이언트나 에이전시 양쪽 모두 악수일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4. 글로 표현하면 단순한데, 실제로는 아주 복잡한 디자인팀



로고 디자인은 Visual Identity로 일컫기도 해서 '눈'으로 표현해봤습니다. 하는 일이 엄청 단순하죠? 작성하면서 잠깐 고민했어요. 사실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파트가 바로 디자인인데요, 업무로 표현하자니 너무 단순한 거예요. 왜냐면 디자인팀의 핵심은 바로 '로고 디자인 개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 전략, 멋드러진 프리젠테이션도 '별로'인 로고 디자인과 결합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전략 따윈 없는데, 로고 디자인이 너무 멋있어서 그냥 통과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디자인이 너무 주관적인 평가가 주도되는 영역인지라 그런 것 같아요. 또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이 좋은 디자인을 식별하는 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그들은 브랜딩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주관적인 성향이 극대화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랜드 전문가들이 얻어걸리는 요행수를 노리고 디자인 할 수는 없잖아요? 10만원짜리 긱 플랫폼에서 찍어내는 디자인과는 달라야죠. 일반적으로 에이전시의 디자인팀은 3~4명의 디자이너와 1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구성돼요. 여러명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고, 그것을 시각화하며, 리뷰를 통해 적합한 로고 디자인 시안들을 걸러내요. 1회의 디자인 보고를 위해 이런 작업이 최소 2~3회 반복되는데요, 여기서 여러 명이 함께 개발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주니어 디자이너의 엉뚱발랄한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를 다듬어 진화시키는 시니어 디자이너, 그리고 전체적인 방향을 이끌어가는 CD, 이 세 조합의 R&R이 가장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 같아요. 디자인 역시 비용의 이슈로 1인 1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요, 주니어 디자이너가 하면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고, 시니어 디자이너가 하면 참신함이 부족하더라고요. CD 혼자서 진행하면 좀 낫지 않겠냐고요?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연륜있는 CD들은 직접 디자인을 안 한지 오래라 불가능합니다. 또, 한다고 하더라도 외장 하드를 뒤져서 옛날 디자인을 꺼내는 수준이예요. 직접 디자인하는 CD들은 정말 손에 꼽고요, CD를 개인적으로 잘 알지 않는 한 절대 맡기지 마세요. 특히 강연이나 행사 참석이 많은 분들은 요주의 대상입니다. 그 많은 행사를 다니면서 디자인을 직접 한다는 건 말도 안돼요! 디자인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5. 디자인의 전문화,세분화로 만들어진 응용디자인팀



옛날 사람으로서 라떼 시절을 얘기하자면, 그 때는 이런 팀이 없었어요. 적어도 우리나라에는요. 해외 유명 대형 에이전시에는 포토샵 시뮬레이션 전담 인력, 출력 및 보드 작업 전담 인력이 따로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엄청 부러워했었죠. 특히 보드 작업은 스프레이 본드를 마시며 하는 극한 작업이었는데요, 요즘은 디지털화되면서 사라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포토샵 시뮬레이션도 소프트웨어가 좋아져서 많이 간편화됐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또다른 응용 제작물들이 대거 등장했는데요, 편집, 일러스트, 3D, 영상, 애니메이션 등 전문화 되고 세분화됐어요. 옛날에는 로고 디자이너들이 간단하게나마 배워서 꾸역꾸역 작업을 했었는데, 요즘은 일반인들의 눈이 매우 높아져서 어설픈 응용 디자인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어요. 특히 3D 및 영상 애니메이션 쪽은 수요가 많아서 해외는 이쪽 분야 전문 디자이너를 뽑는 브랜딩 에이전시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아직 외주나 협업형태로 진행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 '보편화'는 안되었지만 보편화될 것 같은 팀으로 '응용디자인팀'을 만들어 봤어요.




6. R&R로 보는 브랜딩 프로세스


모아 보니 세부 단계가 엄청 많죠? 일반적으로 브랜드 네임과 디자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최소 4명, 많게는 10명까지 참여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기업이 브랜딩 에이전시에 외주 주는 수준으로 자체 브랜딩을 하려면 최소 4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요, 문제는 이 인력들이 첫째로는 브랜드 개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둘째로는 기존 담당 업무와 브랜딩 업무를 병행한다는 데 있어요. 이러한 환경에서 브랜딩 에이전시 수준의 퀄리티를 기대하면 안되는 건데, 많은 대표님들이 직원들의 열정과 애사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참 이해가 안 가요. (아, 물론 일부 비양심적 에이전시의 퀄리티는 제외하고 하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평균치를 놓고 보면 자체 브랜딩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적어도 긱 플랫폼에서 찍어내는 디자인보다는 낫죠.)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자체적으로 해보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브랜딩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까운 것은 자체적으로 해보려고 우왕좌왕하다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데드라인이 임박해서야 에이전시에 요청한다는 것이죠. 물론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뚝딱 만들어내는 게 우리나라 에이전시이지만서도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은 브랜딩을 할 수 있었을 꺼예요. 또 열악한 업무 환경과 연봉 때문에 중도이탈하는 브랜드 크리에이터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예요.




만약 여러분이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개발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다음 세 가지 항목을 체크해보세요.


첫째 목표 수준을 명확히 하세요.

둘째 내부 인력 구성원의 R&R을 설계해보세요.

셋째 각 프로세스 별 충분한 시간을 할당하세요. 특히 역할 별 담당자가 비 전문가라면 시행착오를 겪을 여분의 시간을 할당하세요.


안되겠다 싶으시면 바로 브랜딩 에이전시에 문의하시는 게 가장 효율적인 브랜딩 프로세스입니다.



2022 J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