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랜딩, Re-Branding
브랜드를 다시 만든다는 말인데요, 주인이 바뀌었다던가, 매출이 줄었다던가, 이미지가 악화되었다던가 등등 다양한 이유로 리브랜딩을 진행합니다. 이 분야와 가장 밀접한 것이 저희 브랜딩 에이전시가 아닐까 싶어요. 리브랜딩 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명 또는 브랜드 네임, 로고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니까요. 리브랜딩의 여러가지 활동 중 네임이나 로고 디자인 변경이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하고, 가시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상대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직 문화 변경, 제품 리뉴얼, 광고 집행 등과 비교하면 말이죠.)
그런데, 누구나 쉽게 리브랜딩을 결정할 수 있지만 "잘" 하기는 어려워요. 리뉴얼 전보다 못한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데요, 다른 글에서도 누차 언급했듯이 브랜드 네임이나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기 마련고, 브랜딩의 영향력이 발휘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리브랜딩을 진행한 당사자는 그 실패를 빠르게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이번에는 리브랜딩 실패사례를 통해 최악의 결정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해요.
*리브랜딩 실패사례는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사례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1.GAP
가장 대표적인 리브랜딩 실패사례가 아닐까 해요. 로고 리뉴얼 발표 후 엄청난 반발을 받았고, 단 6일만에 이전 로고로 돌아간 최악의 리브랜딩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Gap-gate"라는 표현까지 나왔었어요.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한 목소리로 욕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요, 그 희귀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디자이너들의 패러디 작업 중 재미있는 것으로 골라봤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Gap 리브랜딩의 실패 원인은 바로 '성의 없는 디자인' 입니다. 이런 로고도 수많은 고심을 거쳐 탄생했을꺼라고요? 흠, 그러기에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요. 왜 '성의없는 디자인'인지 설명드릴께요.
첫째, 패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고려치 않고 단순히 'Gap'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만 집착했어요. 이 디자인은 세상에 있는 Ga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브랜드, 이벤트 행사, 포스터 아무데나 붙여도 무방하죠. 이런 피상적이고 1차원 적인 접근은 아마추어 디자이너나, 정말 고민없이 대충 디자인하는 B급 에이전시에서나 볼 수 있어요. 글로벌 브랜드인 Gap이 그래선 안돼죠.
둘째, 시각적 표현에서도 크리에이티브가 전혀 없습니다. 대학생이 수업시간에 습작으로 만든 로고 디자인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또한 기술적으로 정교하지도 않아요. 제가 집착하는 Grid나 황금비율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어요.
셋째, 유행하면 다 정답인가요? 당시 Helvetica 서체가 유행했는데, 이 서체가 브랜드와 어울리는지,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는지 고민없이 그냥 적용했어요. Gotham 서체가 유행하면 또 바꿀건가요?
다행히 Gap은 재빠르게 새로운 로고를 포기했는데요, 사실 이는 Gap이 크리에이티브와 심미성에 민감한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른 산업 분야는 개발에 투입한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서인지 엉망인 로고를 꿋꿋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2. Tropicana
트로피카나는 마케팅 사례로 매우 많이 회자되는지라,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갈께요. 사실 디자인적으로는 리뉴얼한 로고 및 패키지가 나쁘지 않아요.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이죠. 다만 기존 패키지 디자인이 트로피카나의 브랜드 자산이 되어버린 것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어요. 트로피카나의 고객들은 패키지의 새로움과 아름다움보다 익숙함과 친근함, 편안함을 선호한 것이죠. (식품 쪽 고객 성향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예요.) 패키지를 바꾸고 매출이 20%나 하락했다니, 디자이너들에게는 정말 악몽이었을 겁니다.
3. PWC
PWC 사례는 워낙 오래되기도 하고, 금방 철회되어서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사명을 바꾼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사실 이름이 너무 길잖아요. 그래서 "쉽고 짧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꿨는데요, 결국 실패했어요. 아시다시피 PWC의 고객은 지속적 관계를 맺고 수년에서 수십년 간 같이 일해오는데요, 그들에게 회사 이름이 길고 어려운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회사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전문성이 있느냐죠. 새로운 이름이 기능적으로 좋은 이름이긴 하지만, 비즈니스 환경 및 고객 니즈와는 맞지 않았어요. 네이밍 할 때 무조건 쉽고 짧은 이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클라이언트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사례입니다.
4. PizzaHut
피자헛은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봤을 때 명확하게 실패가 두드러지진 않아요. 5년 정도 사용을 했으니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2019년에 20여년 전 로고로 회귀했다는 것입니다. 뉴트로 트렌드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2014년 리브랜딩이 Worst 사례로 손꼽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피자헛의 상징은 모자 같기도 한 '빨간 지붕'인데요, 2014년 버전은 이 '빨간 지붕'을 Negative 처리를 하고, 토마토 소스 형태의 Frame을 추가했어요. 이렇게 되면 직관적으로 '빨간 지붕'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보이는 대로 말하면 '하얀 지붕'이죠) 너무 많은 시각적 요소가 브랜드 이미지 전달에 방해를 하고 있고, 솔직히 저도 이 로고가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아요.
5. 스타일쉐어
이번엔 비교적 최근의 우리나라 사례입니다. 스타일쉐어는 SNS 기반의 패션 플랫폼인데요, 2020년 대대적 리뉴얼을 했다가 바로 원복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사례인데요, 바로 새로운 로고가 '나치'의 상징물과 유사하여 논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로운 심볼은 2개의 S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라 디자이너가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무조건적으로 심플함과 미니멀을 추구하는 디자인 트렌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단순할 수록 유사성을 피해가기 어렵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디자인 유사성은 둘째치고, 컨셉인 '단추와 스티치'가 스타일쉐어라는 브랜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적합한지도 의문입니다.
6. 산타토익
산타토익은 스타트업 '뤼이드 Riiid'의 AI 토익 학습 브랜드입니다. 2021년 해외진출을 목표로 브랜드 변경을 했는데요, 기존 브랜드 네임인 '산타'가 상표등록이 어려운 점, 해외에서는 종교적 인물로 받아들여져 브랜드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다시 산타토익으로 돌아왔어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변경한 브랜드 '뤼이드'가 우리나라 사람에겐 너무 어려운 이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운 이름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홍보하면 독특한 브랜드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데요, 산타토익의 경우는 기존에 4년간 '산타' 브랜드로 인지도를 쌓아온 점과 브랜드 네임 변경 초기 시 으레 발생하는 반발을 이겨낼 만큼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7. Parler
Parler는 미국 대선 때 유명해진 SNS 플랫폼인데요, 미국 극우주의자들이 트위터 등의 규제를 피해 대거 가입하면서 사용자가 급증했다고 해요. 그에 힘입어서인지 2021년 리브랜딩을 단행했는데, 역시 반년만에 다시 변경하게 되었어요. 정확한 변경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뉴얼되었던 심볼이 너무 추상적이라 브랜드를 상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V, 모래시계, 꽃 등등 사람마다 인지하는 게 달랐고, Parler라는 브랜드와(참고로 Parler는 프랑스어로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연관 요소가 없었거든요.
리브랜딩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실패 사례를 살펴보니, 감이 잡히시나요? 사실 리브랜딩을 실패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아요. 예를 들면 리브랜딩 후 매출 급락, 소비자 반발, 사회적 이슈 제기 등 굉장히 극단적인 경우에만 '실패'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 시간이 꽤 흐른 뒤, 리브랜딩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도 브랜드 소유자의 경험과 안목이 성장했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죠. 아래의 리브랜딩 팁은 '최악'을 피해가고자 하는 신중한 성향의 분들에게 도움이 것 같습니다.
1. 브랜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특히, 리브랜딩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기존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어서이기 때문에, 단점만 눈에 들어오고 장점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바라보도록 노력해 보세요. 외부 전문가에 브랜딩을 의뢰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2. 고객이 리브랜딩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어휴, 자꾸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네요. 그런데 왜 다들 놓치는 것일까요? 트로피카나와 PWC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고객이 별로 원하지 않을 때는 리브랜딩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예요. 단, 고객이 완전히 무관심인 경우도 있어요. 이 경우는 반드시 리브랜딩을 해야겠죠. 네? 원하지 않는 것과 무관심을 어떻게 구분하냐고요? 그렇다면 브랜딩이 문제가 아니라 고객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을 먼저 만드셔야 할 것 같아요.
3. 리브랜딩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세요.
다양한 리브랜딩의 이유 중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하나의 목표를 정해 보세요. 목표가 많을 수록 방향성을 잃고 헤메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첫번 째 목표만 달성해도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진행하면 의사결정도 쉽고 빨라지고, 실패할 확률도 낮아집니다. 단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브랜딩이 완성된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4. 축적된 브랜드 자산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또 추구합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돼요. 새롭게 변화했을 때 그 순간은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곧 식상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것이냐 '축적된 인지도'를 계승할 것이냐는 리브랜딩 시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만, 실패하지 않으려면 후자가 가장 안전한 선택입니다. 특히 오랜 시간 누적되어 쌓여온 고객 인지도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요즘처럼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선호도를 떠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예요.
5. 기존 브랜드와 연결 고리를 유지하세요.
드라마틱한 변화는 흥미롭죠. 그런데 드라마틱한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하는 사람도 꽤 많아요. 실패하지 않는 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요, 브랜드 구성 요소 중 적어도 1개 이상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겁니다. 네임일 수도 있고, 심볼의 형태나 색상, 또는 서체일 수도 있어요. 브랜드 이미지의 연속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또 점점 성장하고 발전하는 브랜드로 보여질 수 있거든요.
실패하지 않는 리브랜딩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변화의 정도가 크지 않아요. 그렇기에 안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죠.
상대적으로 파격적인 리브랜딩을 한 사례는 그 대담함과 시도는 칭찬할만 하다고 생각해요. 단, 그 결과를 책임질 자신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