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든 브랜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 즉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인 브랜드 네임 개발이나 로고 디자인, 디자인 시스템 개발 모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죠.
그 중에서도 브랜드 네임은 브랜딩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피치 못하게 같은 브랜드 네임을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도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듯이, 브랜드도 같은 네임을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네임이 같다는 것은 간단한 언어적 소통(Verbal Commnunication) 시 오해와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대부분 고유한 역사와 인지도를 축적해 왔기에 네임을 변경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신규 브랜드 네임을 개발할 때는 "000과 비슷하다" "000이 연상된다"라는 이유로 거부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네임 개발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달라질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고, 기존 브랜드로 인한 선입견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설득을 위해 네임 개발 단계에서 로고 디자인까지 모두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브랜드 사례와, 다른 모습을 가진 같은 브랜드 사례입니다.
이를 통해 같은 브랜드 네임의 한계를 벗어나 차별화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아요.
Part I.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브랜드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이죠. 대표 제품이 같은 식품군이어서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요, 각각 '설탕 삼양'과 '라면 삼양'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 이 두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잇달아 CI를 변경했어요. '설탕 삼양'은 더 이상 설탕에만 제한되지 않고 화학 및 반도체, 배터리 소재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 '라면 삼양'은 불닭열풍에 힘입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죠.
앞으로는 이 두 회사의 네임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됩니다. 색깔로 구분하거나, 심볼의 유무로 구분해야 할까요?
또다른 대표적 혼동사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호 중 하나인 "제일"을 사용하는 건설기업인데요, 분야가 동일하기에 (주)가 앞에 붙느냐 뒤에 붙느냐로 구분을 했습니다. 다만, 저조차도 두 회사가 다른 기업임은 알고 있지만, 구별을 전혀 못합니다. 더구나 최근 한 회사가 부도가 났는데요, 연관 검색어조차 잘못된 정보로 구성되었더라고요. 정보를 꼼꼼히 읽지 않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오해했을 것입니다. 같은 네임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처럼 혹시 모르게 발생할 미래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죠.
한 때 우리나라에도 각각 진출하여 혼선을 불러일으켰던 글로벌 생명 보험사입니다. 영어권에서는 Prudential Financial 과 Prudential PLC로 구분되고 있는 것 같아요. 로고 디자인에서는 바위 심볼과 여신 심볼, 그리고 정반대의 색상으로 명확하게 차별화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해외에서는 같은 네임을 가진 다른 브랜드 사례로 Delta를 많이 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델타 항공만 알고 있지만, 또다른 델타는 수전 및 수도설비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다행히 사업 분야가 완전히 다르고, 수전 브랜드인 델타는 기업명이 Delta Faucet(수전, 수도꼭지)여서 구분이 비교적 쉽습니다.
같은 네임, 다른 브랜드 사례로 갤럭시를 빼놓을 수 없죠. 비록 둘 다 삼성의 제품 브랜드이지만 각각 휴대폰과 패션정장으로 분야가 다릅니다. 두 갤럭시는 기업 브랜드를 통해 서로 연계되어 있기에, 동명이인이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위의 두 미샤는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같은 브랜드 네임은 아니지만, 한국어 발음상 동일하기에 같은 브랜드 네임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 뷰티와 패션은 각각 다르지만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분야인데요, 또 최근에는 두 분야를 넘나드는 브랜드들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따라서 과거에는 저가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하이엔드 여성복 브랜드 미샤가 선을 긋고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그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패션 브랜드들이 성장 정체를 화장품 브랜드 확장으로 타개하려는 추세에서 이 브랜드들이 앞으로 어떤 전략을 채택할지 궁금해집니다.
위의 두 도브는 일생생활에서 종종 접하는 매우 친숙한 제품들인데요, 아마 비누에서 초콜렛 향이 날 것 같다거나, 초콜렛이 비누맛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 콜라보 열풍 때 딱풀 사탕, 우유 바디워시가 선을 넘는 마케팅으로 질타를 받았었죠. 비슷한 사례로 최근 비누 도브가 쿠키로 유명한 브랜드 Crumbl과 콜라보한 제품을 출시했는데요, 이종 산업 브랜드간의 차별화와 협업에서의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위의 두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과 연령대에 따라 인지도 및 최초상기도가 현저히 다를 것입니다. 왼쪽의 스탠리는 전동드릴로 유명한 공구 브랜드이고, 오른쪽의 스탠리는 최근 급부상한 텀블러 브랜드이죠. 여러분은 '스탠리'라는 네임을 들었을 때 어떤 제품을 떠올리시나요? 또, 만약 스탠리와 스탠리가 콜라보 제품을 출시한다면 재미있는 협업으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로고 디자인 변경으로 받아들일까요?
Part II. 같지만 다른 모습을 가진 브랜드
지금은 이름이 바뀐 쌍용자동차의 경우 국내와 해외가 다른 엠블렘 디자인을 사용했습니다. 왜냐고요? 국내 엠블렘 디자인이 해외에서 유사성을 이유로 등록 거절 당했기 때문이죠. 브랜드가 넘쳐나는 지금, 글로벌 수많은 국가의 상표권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물론 글로벌화에 맞춰 국내 브랜드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국내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일 수록 변경 시 리스크가 더 큰 법이죠.
한 때 너무나 핫했던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의 몰락은 조금 많이 안타깝습니다. 아우디는 최근 중국 전기차 브랜드로 새로운 로고 디자인을 발표했는데요, 브랜드 이미지를 타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시장이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브랜딩 전략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사한 비교 사례로 강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Jaguar의 리브랜딩이 있습니다.
스크린골프 브랜드 골프존은 최근 골프웨어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골프존 어패럴을 런칭했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로고 디자인이 패션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과 경쟁이 치열한 패션 산업에서 생소한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는 데 따른 막대한 홍보비 부담으로 인해, 같은 브랜드 네임을 사용하되 다른 로고 디자인을 적용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에게는 츠타야서점으로 알려진 일본의 비디오 음반 렌탈샵 츠타야 역시 플래그십 스토어인 시부야점을 리뉴얼하며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도입했습니다. 츠타야에 관해서는 예전에 다룬 적이 있어서 (읽어보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께요.
브랜드 네임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타 업종, 타 국가의 모든 브랜드와 차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심지어 상표권 깡패라고 불리는 애플조차도 모든 상표권 소송에서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Part I 사례들은 비록 같은 브랜드 네임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히 차별화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요즘 소비자들은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 외에도 슬로건, 어조(말투), 모션 그래픽, UIUX 등 다양한 구성 요소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하고 경험하는 시대에서는 통합적 브랜드 아이덴티티 설계와 유지관리가 더욱 중요해요.
반면 Part II 사례들은 하나의 브랜드가 기존과 다른,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운영 전략을 고민해 보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네임은 단 하나의 로고 디자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벤트성으로 잠깐의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할로윈 파티를 위해 전혀 다른 나로 변신할 수 있지만, 파티가 끝난 다음 날에는 일상의 모습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Part II 사례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브랜드 아이덴티티 변화를 위한 실험이자 과도기 단계로 볼 수 있어요. 브랜드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지금, 꾸준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점검과 점진적 변화만이 불확성실 시대 환경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