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브랜드를 접하게 되는 분야가 바로 커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에서부터 드립커피, RTD 커피, 원두커피, 캡슐커피 까지, 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부터 다양한 개인 카페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커피 브랜드가 있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프릳츠 커피' '앤트러사이트' 등 훌륭한 브랜딩으로 단숨에 유명세를 얻고 영역을 확장한 성공사례가 있어, 작은 개인 카페들도 브랜딩을 신경쓰기 시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성공적인 커피 브랜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보니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라는 것이 참 애매해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거든요. 특정 브랜드가 유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한다면, 짝퉁 브랜드에 그쳐버리기 쉽상입니다. 단순히 예쁘장한 로고와 패키지에 만족한다면 'One of Them'에 머무르겠죠.
제가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해서는 바로 브랜드의 정체성, Identity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예요. 커피라고 해서 이 원칙을 벗어나지는 않아요.
브랜드비는 최근 2년 간 해외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개발한 다양한 커피 브랜드 중, 인상적인 사례 8개를 선정해봤습니다.
국내는 이미 유명한 브랜딩 사례가 많아서 다들 한번 쯤 접해보셨을 것 같아, 해외 사례 위주로 다양한 관점에서 브랜딩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골라봤습니다.
순서는 램덤이며, 브랜딩에 대한 객관적 결과(매출 증가, 인지도 상승 등)는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다는 점 유의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구요!)
1. 180년 역사의 커피 브랜딩 : Bewley's by Pearlfisher
Bewley's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커피 브랜드입니다. 1840년에 세워진, 무려 1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 처음에는 중국과 차 무역을 했는데, 추후 커피까지 확장했다고 합니다. Grafton Street에 있는 카페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유명한데요, 안타깝게도 COVID19의 영향으로 현재는 문을 닫았습니다.
Pearlfisher는 Bewley's 리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이 아이코닉한 카페의 특징을 패키지 디자인에 반영했습니다. 비록 매장은 사라져도 패키지에 남는다고 할까요?
< Bewley's 카페 내부 모습>
<Bewley's 카페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은 패키지 디자인>
Grafton Street의 Bewley's 카페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추억과의 연결고리가, Bewley's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패키지 디자인으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특히 이 변화는 기존 패키지 디자인과 비교해보면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존 패키지 디자인은 Bewley's의 오랜 역사는 알 수 있지만, 고루하고 보수적인 느낌입니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운 것이죠. Pearlfisher의 리브랜딩은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진화를 보여주는 멋진 디자인입니다.
2. 익숙하지만 소모된 브랜드의 리브랜딩 : Elle Cafe by Butterfly Cannon
Elle는 전세계인이 알고있는 글로벌 브랜드죠. 매거진으로 출발하여 패션 및 뷰티 브랜드까지 확장했어요.
Elle가 커피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요즘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이름을 걸고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Elle 브랜드가 기존에 진출한 패션이나 화장품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 브랜드를 최우선으로 구매하지는 않을 것 같은 평범하고 무난한 브랜드죠.
Butterfly Cannon은 Elle가 가진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해 로고타입을 응용한 패턴을 개발했고, 다양한 색상 조합을 통해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Elle Cafe는 백화점 및 부티크 호텔에서 판매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커피 브랜드를 통해 오리지널 IP브랜드인 Elle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3. 셀러브리티의 커피 브랜딩 : Top of the Mornin' by Earthling
Top of the Mornin'은 유명 게임 방송 유튜버, JacksepticEye가 만든 커피 브랜드입니다. (지난 브랜드비 Special Feature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두번째 등장입니다.)게임과 커피라니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JacksepticEye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고요, 브랜드 네임 역시 그의 유명 멘트에서 따왔습니다.
처음 런칭했을 때의 로고 디자인과 패키지는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요, JacksepticEye가 들고 찍은 사진과 영상이 없었다면 그저 동네의 조그마한 이름없는 카페의 원두 패키지라고 생각했을 것이예요. 위 사진만 보더라도 JacksepticEye의 캐릭터와 완전히 동떨어진 이미지의 디자인임을 알 수 있어요.
귀여운 햇님 캐릭터와 밝고 경쾌한 색상을 도입한 새로운 디자인은 JacksepticEye와 정말 잘 어울리지 않나요? 사실 Top of the Mornin'은 커피스럽지 않은 브랜딩이예요. Absurdly Good Coffee라는 태그라인이 없다면, 모르는 사람은 커피 브랜드임을 알아차릴 수 없죠. 하지만 이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이자 셀링 포인트는 바로 브랜드를 만든 셀러브리티, JacksepticEye 입니다. JacksepticEye가 보유한 수천만 팬들에게 다가가려면 그의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4. 독특한 네임과 로고 플레이 : Night Swim Coffee by Matt Stevens
Night Swim Coffee는 다른 사례와 달리 로고를 먼저 보여드립니다. 왜냐구요? 네임과 로고가 다 해버렸거든요.
Night Swim Coffee는 미국 샬롯 시에 위치한 커피 로스터리 브랜드입니다. 샬롯 시에서 운영되던 2개의 커피 교육 매장이 협업하여 새롭게 만들었다고 해요. 커피 로스터리이자, 카페면서 또 제품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네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 그대로 '밤 수영'의 낭만적이면서 신비한 이미지를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보름달과 달빛이 비친 수면을 형상화한 심볼 디자인이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5. 패키지 중심의 브랜딩 : Dalston Coffee by Ingrid Picanyol
Dalston Coffee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주 작은 카페입니다. 말 그대로 'Tiny'한 매장으로 유명했는데요, 본격적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리브랜딩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브랜드비는 해외 브랜딩 사례의 경우 가급적이면 크고 유명한 브랜드를 다루려고 하는데요, 솔직히 방대한 해외 브랜드를 모두 파악하기엔 힘에 부치기도 하거니와 작은 브랜드일 수록 브랜드 전략 없이 예쁘장한 디자인으로만 개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Dalston Coffee는 예외적으로 이 규칙을 깨게 되었어요. 독특한 패키지 디자인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단순히 개인 취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멋지고 훌륭한 패키지 디자인을 많이 봐온 제 머리 속에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쉽지 않아요!
디자이너인 Ingrid Picanyol은 이번 리브랜딩을 패키지 디자인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요. 바르셀로나의 작은 매장인 Dalston Coffee의 핵심을 '동네' '이웃'으로 정의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커피를 담고 있는 작은 '집'을 디자인했습니다. 또 각 패키지에 실린 다양한 일러스트를 통해 '집 창'을 통해 엿보는 다양한 삶을 표현했습니다.
<기존 Dalston Coffee 매장과 패키지>
Dalston Coffee는 작은 브랜드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식품 분야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전달 매체인 패키지 디자인에서의 차별화를 이룬 훌륭한 사례입니다.
6. 통합 브랜딩의 중요성 : BrewBird by Mucho
2012년 캡슐커피의 대명사 '네스프레소'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다양한 캡슐커피가 등장했습니다. BrewBird는 샌프란시스코의 커피 스타트업인데요, BrewBird의 특징은 다양한 로컬 로스터리의 원두를 그대로 사용하고(갈지 않은 상태의!), 친환경 캡슐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패키지를 보면 다양한 로컬 로스터리 원두를 표현하기 위해 각각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브랜드인 BrewBird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죠.
Mucho는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추출하는 신선한 커피의 특징을 전달하기 위해 물감 아티스트 Craig Black과 협업했습니다. Graig Black은 물감을 통해 각 제품 고유의 향과 풍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해요.
또 로컬 로스터리의 로고를 인쇄하기 보다는 원두의 정보를 담은 QR코드를 통해 정확하고 깊이있는 원두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브랜딩이 기존 로스터리 중심이 아닌 BrewBird 중심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분명 다양한 로컬 로스터리의 신선한 원두를 맛본다는 것은 BrewBird의 장점입니다. 다만 브랜딩의 무게 중심은 로컬 로스터리가 아닌, 소비자가 집에서 신선한 원두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BrewBird의 유통력과 기술력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로스터리의 다양성'이 아닌 '맛과 향의 다양성'을 표현한 아름다운 패키지 디자인도 훌륭합니다.
7. 가장 일본적인 브랜딩 : Ippuku by The Clearing
Ippuku (잇푸쿠)는 일본어로 '한 모금', 즉 '차를 한 번 마시다'라는 뜻입니다. 더불어 '잠깐 쉬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하네요.
Ippuku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커피회사 UCC가 미국 시장을 타겟으로 출시한 드립커피 브랜드입니다. 드립커피 제품은 주로 일본과 한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미국사람에게는 낱개로 포장된 드립커피 자체가 생소할텐데요, UCC는 브랜드 네임 자체도 일본어로 출시하는 강수를 둡니다. (거기다 서브 네임도 일본어로 지었어요.) 패키지 디자인도 지극히 일본적인 그래픽을 채택했어요.
< 제품 네임인 '와비&사비'는 일본 문화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합니다>
글로벌 브랜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로컬스러워서 조금 당황스러웠는데요, 굳이 추측해보자면 티백형 드립커피의 생소함을 서양문화에서 매력적인 콘텐츠로 인식되는 일본 전통 문화로 극복하려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티백형 드립커피=일본'이라는 공식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다만 미국 현지에서는 그다지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전통 문화'가 녹차의 이미지가 강해서 커피 제품까지 확장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까 싶어요.
UCC는 이전에도 Ueshima Coffee Company라는 글로벌 향 제품을 출시했는데요 (역시 The Clearing이 디자인했습니다), 이 또한 일본 냄새 물씬 풍기는 디자인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브랜딩에 있어서도 이 공식이 통할지 간접적으로 UCC의 성공여부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커피 아닌 커피를 브랜딩하다 : Compound by Pearlfisher
Compound는 Beanless Coffee라는 태그라인을 달고 있습니다. 커피콩 없는 커피를 커피라고 할 수 있나? 라고 갸우뚱하실 텐데요,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커피 열매의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 커피라고 합니다. 업계에서는 '대체 커피'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어요.
대체 커피는 요즘 기후 변화, 탄소절감과 관련하여 부각되는 새로운 산업입니다. 커피는 식품 중 5번째로 탄소배출량이 많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1등은 쇠고기입니다.), 또 기후 변화로 인해 커피 생산 가능 지역도 점점 줄고 있다고 해요. 기존 커피 생산방식으로는 갈수록 더 증가하는 커피 소비량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인 것이죠.
다만, 대체 커피 역시 '대체육'과 마찬가지로 일반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저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호식품에게 있어 이 심리적 저항은 엄청난 것이예요. 저는 그다지 미각이 뛰어나지 않아서 커피의 섬세한 맛과 향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아주 맛없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주의인데요, 대체 커피는 마셔보지도 않았음에도 '맛 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리더라고요.
Compound는 이런 선입견에 대응하기 위해 과감하고 화려한 색상을 사용합니다. Compound가 메인으로 사용하는 Blue는 기존 식품 브랜드는 사용하지 않는, 최근 IT/디지털 브랜드가 많이 사용하는 색상이예요. 인공적인 커피임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커피 생산과정을 그래픽으로 표현하여 대체 커피의 장점과 환경에 끼치는 이로움을 설명하고 있어요.
인공적인 가공 식품은 식품 카테고리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지되는데요, 그동안 소비자에게 'Organic은 몸에 좋고 고급스럽다, Artificial은 해롭고 저렴하다'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예요. Compound는 자신의 단점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타내되, 아름다운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매력도를 높인 사례입니다. 저조차도 한번쯤은 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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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해외의 다양한 커피 브랜딩 사례를 살펴봤어요.
커피 브랜딩은 모든 브랜딩 에이전시, 디자이너들이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어하는 분야가 아닐까 해요. 하지만 그만큼 차별화가 어려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커피 브랜드가 있고, 제 각각의 아름다운 브랜드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소비자에게 특별한 브랜드로 인식되려면 남들과 다른 한 끗이 필요하겠죠?
어디선가 본 문구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The best designs come from problem-solving, not just aesthetic preferences."
- Aaron Drap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