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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블라는 왜 실패했을까

최근 GS리테일이 운영하는 드럭스토어 '랄라블라'가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 GS리테일, H&B 랄라블라 사업 철수 ) 뉴스에 따르면 랄라블라 브랜드 철수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브랜딩 업에 종사하는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브랜딩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랄라블라 브랜드는 2018년 2월에 런칭되었고, 관련해서 제가 2019년 3월, 개인 블로그에 '랄라블라는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라는 글을 썼었는데요, 예상은 했었으나 현실로 접하니 좀 착잡하네요. 브랜드에 대한 비평은 가급적 자제하는 제가 당시 글을 썼던 것은 랄라블라의 전신인 '왓슨스'의 팬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약 3년 반이 지난 지금 '랄라블라는 왜 실패했을까'로 제목을 바꿔서 공유합니다. 그동안 글을 쓰는 톤&매너가 변화한지라 좀 민망합니다만, 여러분은 3년 전 작성한 글임을 감안해서 봐주세요.


*개인 블로그는 brandB를 오픈하면서 닫았습니다.





랄라블라는 왜 실패했을까

2019/03/12



<랄라블라 매장 | 사진 = 더스쿠프 포토>


"랄라블라 lalavla"는 GS리테일이 운영하는 H&B 스토어이다. 2005년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왓슨스Watsons 코리아를 전신으로 하고 있으며, 2018년 합작법인을 정리하면서 브랜드를 변경했다. 왓슨스 브랜드로 운영할 당시만 하더라도 H&B 스토어를 선도하는 확실한 No.2 브랜드였으나, 브랜드 변경 후에는 오히려 매장 수가 줄어들어 후발주자인 롭스에 따라잡힐 위기에 처해있다. 런칭한지 채 1년밖에 되지 않은 브랜드의 성공을 논하는 것은 시기 상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브랜드 관점에서 랄라블라는 실패이다.





첫 번째 실패 원인 : 정말 이상한 브랜드 네임


브랜드 네임이 이상하다는 평을 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대대적인 투자와 홍보비용이 들어가는 대기업의 브랜드일수록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독특한 브랜드 네임보다는 보편타당한, 즉 무난한 네임을 선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도 다양한 브랜드를 접하면서 익숙해졌기 때문에 웬만하면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랄라블라는 정말 평이 안 좋았다.

'웃기다(재미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별로다, 센스가 없다' 등 부정적 평이 쏟아졌다.


랄라블라는 철자 구성이나 발음 측면에서 나쁜 네임은 아니다. 상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철자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동일한 발음(la)의 반복과 변주를 주면서 좀 더 쉽게 인지하고 쉽게 불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의미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 뉴스 기사에 의하면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도 하고, '랄랄라 Lalala'와 '블라 블라 BlahBlah'를 결합하여 '즐겁고 행복한 수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사랑스럽고 생동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웃기고 이상하다'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나는 가장 큰 원인이 '어감(語感)'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밍에서 어감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뜻하는데, 신규로 만들어진 브랜드 네임의 경우 오리지널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발음의 다른 단어를 연상시켜 엉뚱한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물론 연상 이미지는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문화나 당시 유행에 따라 특정 성향을 보인다.


랄라블라의 발음 중 특히 '랄'이라는 발음은 우리나라에서 욕설 및 비속어에 많이 사용되는 음절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부정적 연상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랄'이라는 발음이 들어간 네임 후보안은 위치가 앞, 뒤, 중간 할 것 없이 들어가기만 하면 십중팔구 클라이언트의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블라'라는 발음 역시 긍정적 음감은 아닌데, '블라블라 BlahBlah'라는 단어 자체가 약간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거니와, 발음 역시 욕설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즉, 개별적으로 보면 무난하다고도 볼 수 있는 단어들이 결합을 통해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부정적인 어감이 더욱 부각되어 '이상한' 네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네임을 만든 사람이나 선정한 사람 모두 소비자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네이밍에 있어 '어감'은 객관적인 수치나 논리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려운 부분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네이밍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 실패 원인 : 브랜드 정체성이 없는 디자인


심미적으로 랄라블라의 로고 디자인은 나쁘지 않다. 요즘 트렌드이기도 한 산세리프 서체와 세련된 색상, 알파벳 v를 하트로 표현한 아이디어 등, 로고만 놓고 보자면 아주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한다. 하지만 브랜드 로고는 심미성 보다 정체성을 더 우선시 해야 한다. 브랜드 로고는 브랜드의 핵심을 응축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가장 즐거운 방법"


랄라블라 홈페이지에 나오는 브랜드 소개 문구이다. H&B 스토어로서 건강(Health)과 아름다움(Beuaty)을 즐거운 체험을 통해 제공하겠다는 브랜드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로고 디자인에서는 건강함도 아름다움도, 심지어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랄라블라의 로고마크>


랄라블라 네임은 발음 상으로는 '발랄'한 편이다. 그런데 영문 로고를 보면 직선과 원으로만 구성되었는데, 특히 막대 같은 소문자 'l'이 3개나 들어가고, 소문자 'a'도 미니멀하게 원과 직선이 결합된 것으로 디자인했다. 딱딱한 직선이 6개나 반복되는 셈인데, 색상도 블랙에 가까운 네이비를 적용하여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v'를 하트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화사한 핫핑크 색을 적용하였는데, 스타일 및 색상 대비가 너무 극명하여 'lala ♥ la'로 보이는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실제로도 '라라라'로 읽힌다고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만약 서체를 좀 더 얇게(Light) 적용했다면 좀 더 경쾌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랄라블라 서체 두께에 따른 이미지 비교 : Futura Bold vs. Futura Light>



하지만 로고 디자인에 있어 근본적 문제점은, 업의 속성 및 타겟을 고려하지 않은 서체 및 색상 선정에 있다고 하겠다.

H&B 스토어는 건강과 뷰티를 함께 추구하지만,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무게중심이 뷰티에 있다. 또한 주요 고객은 20~30대 여성이다. 일반적으로 뷰티 및 연관 카테고리의 브랜드들은 본질적으로 세련됨과 우아함, 감성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일부 랄라블라에 적용된 서체처럼 미니멀하고 딱딱한 서체를 사용하는 브랜드도 있는데, 대부분 전문적, 합리적, 이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의사가 만든 코스메틱 브랜드, 또는 남성 화장품 브랜드이다. 랄라블라와 미국의 드럭스토어 CVS pharmacy 의 로고와 비교해보면, 랄라블라의 브랜드 이미지 포지셔닝 전략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트 심볼의 오마주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미국 드럭스토어 CVS pharmacy의 로고>




만약 랄라블라가 네임을 변경하지 않고, 왓슨스를 계속 사용했다면 이 디자인이 어울릴 수도 있다. '왓슨스'라는 네임 자체가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IBM의 인공지능 브랜드가 왓슨Watson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뷰티 제품들을 한 곳에서 직접 체험하며 구매하는 '즐거운' 장소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어색함은 랄라블라라는 이상한 네임과 결합되면서 극대화되었다.




왜 GS리테일과 같은 대기업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집단 크리에이티브'의 폐해라고 본다.

매체에 따르면 네임 및 디자인 모두 사내 공모를 통해서 개발되었다고 한다.'사내 공모'나 '대국민 공모'는 브랜드 개발 시 종종 등장하는 방법론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정말 좋은 네임이나 디자인이 탄생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이벤트'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를 추구한다면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될 방법론이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딩 에이전시의 네임 및 디자인 개발 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깎으려 들거나, 자체 개발을 통해 비용 절감을 하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당연히 비용이 적게 들겠지만, 잘못 개발된 브랜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랄라블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네임 및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좋지 않지만, 이미 투입된 그리고 또 발생할 간판 교체 비용과 홍보 비용 때문에 감히 변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브랜드 네임과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열악한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과거의 왓슨스 브랜드를 선호했었다. 친근한 생활매장 이미지의 올리브영 대비, 왓슨스는 좀 더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깔끔한 디자인의 PB 상품이 좋았다. 집 근처에 매장이 있는데, 딱히 필요한 게 없어도 퇴근길에 꼭 들리는 '참새방앗간'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랄라블라로 변경된 후에는 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매장이 되어버렸다.


비록 비즈니스 이슈로 브랜드 교체를 하게 되었더라도, 분명 왓슨스가 갖고 있던 장점 및 브랜드 자산을 계승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십여 년간 왓슨스를 운영하면서 축적된 노하우에도 불구하고, 랄라블라로 변경 이후 더 확장하기는 커녕 축소되는 것을 보면, 브랜드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2022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