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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기여도 꼭 필요할까?

최근 채용 공고에 종종 등장하는 문구가 있어요. 바로 "프로젝트 기여도를 퍼센티지로 표기하라"는 것인데요, 옛날 사람인 저로서는 처음 봤을 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대문자 T여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이번 글은 프로젝트 기여도 표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프로젝트 기여도의 시작은 누구일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추측건대 요즘 핫한 직종인 IT업계 및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Chat GPT에 프로젝트 기여도에 대해 물어봤을 때 답변이 대부분 코딩, 테스트, 프로젝트 관리, 문서화 등 IT 개발과 관련한 내용으로 구성되었거든요. IT업계에도 디자이너의 역할이 있고, 같은 디자인으로 연결되어 브랜딩 업계에도 전파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2. 프로젝트 기여도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세우나?


이것이 대문자 T인 제가 가장 큰 의문을 지닌 항목입니다. 기준이 불명확한데, 여기서 만들어진 숫자가 과연 정확할 수 있을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기준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브랜딩 프로젝트의 다수를 차지하는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볼께요.



위 프로세스는 보편적인 개발 프로세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프로젝트 속성 및 에이전시 내부 프로세스에 따라 용어 및 구분이 달라질 수 있어요. 또 기획자로서 아쉬운 부분은 실제 업무 수행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은 위 프로세스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예요. 오롯이 "개발"에 촛점을 맞췄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여도 측정이 "개발"을 하는 디자이너에게 요구되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략적인 구조를 짜 보았으니 이제 구체적 기준을 세워보겠습니다.




기여도를 숫자화하기 위해서는 2가지 측정 기준이 필요합니다.


(1) 업무 중요도 및 비중 :

브랜드 개발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업무 자체에 대해 중요도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도는 역시 에이전시 및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저는 기획자라서 앞단의 기획/전략 파트 비중을 높게 주고 싶습니다만, 경험 상 많은 디자이너들이 중/후반부를 훨씬 더 중요시 하는 것을 봐왔기에 소심하게 10%로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런데 구직자는 이 중요도를 어떻게 책정할까요? 그들이 책정한 중요도가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요?


(2) 개인 참여 비중 및 기여도 :

이해를 돕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2명의 디자이너가 투입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임의로 A,B의 참여 비중을 기입해 보았습니다만, 우리 브랜딩 업계 사람이라면 대략적으로 두 사람의 역할을 유추하실 수 있을 것이예요. 이 역시 아주 주관적인 숫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측정 기준을 세웠으니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고요!





솔직히 저도 계산하면서 현타가 왔어요. 이걸 꼭 해야 돼? 디자이너 구직자들이 포트폴리오 작업하면서 계산기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기도 했고요. 또, 면접관들은 이력서에 작성된 프로젝트 기여도 숫자를 보며 그 근거를 역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엄청난 암산 능력입니다!)


일단 위쪽의 수많은 퍼센티지 기호들은 무시하고, 가장 아래 총합을 주목해 봅시다.




비록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숫자 상으로는 A의 기여도가 B보다 더 높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아래 A와 B가 수행한 업무들을 보시면 과연 기여도가 더 높은 것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예요.

왜냐면 일반적으로 B의 업무는 디렉터 또는 시니어 디자이너의 업무이고 A는 주니어 디자이너의 업무이기 때문이죠. 만약 주니어 디자이너 A가 이 기여도 수치를 기반으로 "이 프로젝트는 제가 주도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납득이 가실까요?






3. 100%가 아닌 이상 프로젝트 기여도 숫자의 의미는 없다.


앞서 프로젝트 기여도의 시작이 IT업계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IT업계의 프로젝트는 인력 단가와 월투입인력 수(흔히 M/M이라고 표기합니다)에 따라 견적과 성과가 측정됩니다. IT프로젝트의 대부분이 크리에이티브가 아닌 기능 구현과 성능 제고를 프로젝트 성공의 판단 기준으로 삼기에 가능한 것이죠. 대부분 결과물이 투입 인력의 수와 시간에 정비례합니다.

그런데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많은 사람이 투입된다고 빠르고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수 백 명 내지 수 천 명이 참여하는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 디자인 공모전 결과가 "안습"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제가 면접관이라면 프로젝트 기여도에 적혀진 숫자 중 100%를 제외하고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담당했다는 뜻인 100%조차도, 제 경험에 미뤄봤을 때 주니어 급의 디자이너가 100% 기여했다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할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에이전시라면 주니어 디자이너 한 명에게 전체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이런 에이전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설사 있다해도 그런 에이전시에서의 경험이 주니어 디자이너의 경력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채용 관련 콘텐츠에서도 프로젝트 기여도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숫자를 도출해낸 논리적 근거와 이유가 중요한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 브랜딩 업계에서 프로젝트 기여도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제가 작성한 단계를 밟아야 할텐데요, 솔직히 저 복잡한 단계를 구두 면접에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면접 시간이 산수 시험도 아니고 말이죠. 기여도 수치를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왜 굳이 숫자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죠?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근거로 내린 판단이 올바를 수 있을까요? (물론 이는 대문자 T의 생각입니다!)






4. 그래서 Credit과 R&R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숫자보다 문자로 프로젝트 참여도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연차가 꽤 있는지라 나름 많은 면접을 진행해 보았는데요, 사실 채용 실패 경험도 무척 많았어요. (직원을 잘못 채용했을 때 그 고생과 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이야기가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구직자가 기여도를 과대포장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심각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바로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은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당당히 기입하는 것예요. 비록 동종 업계라고 하더라도 모든 에이전시들이 서로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면접자의 직장에 직접 연락해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나중에 알고보니 "비주얼 디렉팅"이 아니라 "무드 보드 이미지 서치를 도왔다"라던가, "후보안 개발"이 아닌 "발상 미팅에 잠깐 참여했었다"인 경우가 꽤 많았어요.


그래서 모든 판단은 투명하고 진실된 Credit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전체 참여인력 3명인 프로젝트에서의 역할과 10명인 프로젝트에서의 역할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허구의 숫자로 퉁치려 해도 퉁칠 수 없거든요.


프로젝트의 Credit을 공개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큰 효과가 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Credit이 쌓이고 쌓여 채용을 할 때나 협업 파트너를 구할 때, 좀 더 쉽고 편리하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우리 브랜딩 업계에 "신용"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점이예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프로젝트 참여 인력의 Credit을 공개하는 문화가 한시라도 빨리 정착되기를 기원합니다.

2025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