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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 브랜딩이냐 타이포 마케팅이냐

타이포 브랜딩, 즉 브랜드 전용 서체 개발과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기사와 글이 존재합니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한 글도 많기에, 굳이 비슷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솔직히 더 잘 쓸 자신도 없고요.) 그래서 이번 글에는 브랜드비만의 관점을 담아보려 노력했어요. 전용서체 개발의 목적이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요, 어떤 유형으로 개발할 것이냐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브랜드비는 브랜드를 창조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이니까요. 또 가능한 한 유명한 사례보다는 최신 사례로 구성해봤습니다.






서론. 타이포 브랜딩이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생소한 일반인 독자도 있을 수 있기에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할께요.

타이포 브랜딩이란 '타이포그래피 Typography' 즉, 브랜드 고유의 서체를 개발하여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합니다.

브랜드 전용 서체가 적용되는 아이템으로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에서부터, 패키지, 인쇄물,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 사례로는 현대카드를 들 수 있습니다.



훌륭한 브랜딩 사례로 손꼽히는 현대카드는 우리나라 브랜딩의 패러다임을 바꾼 타이포 브랜딩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죠. 너무 유명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런데 현대카드 브랜딩의 벤치마킹 사례이자 롤모델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너무나 유명한 고전(Classic)이라 그런지 오히려 타이포 브랜딩 사례에서 종종 생략되는, GE의 전용서체 GE Inspira 입니다. GE 그룹의 계열사 CI에서부터 각종 홍보물과 광고물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사용되었죠.


위의 두 사례, 우리나라의 현대카드와 해외의 GE 사례만 살펴봐도 훌륭한 타이포 브랜딩의 방법 및 효과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타이포 브랜딩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브랜드비는 타이포 브랜딩 방법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어요. 분류하다 보니 어떤 유형은 타이포 브랜딩이라기보다는 타이포 마케팅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타이포 브랜딩이냐, 타이포 마케팅이냐"가 되었답니다. 자, 저와 함께 살펴 보아요.






1.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연계한 전용 서체 디자인 + 폰트 비공개


전통적인 타이포 브랜딩은 대부분 1번에 해당합니다. 통합적인 브랜딩의 일환으로 전용 서체를 개발하기에 로고 디자인의 특성을 담아 전용 서체를 개발하고, 서체만 보더라도 브랜드 로고가 연상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전용서체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다이렉트로 연결되기에, 전용 서체의 라이센스 정책에 매우 폐쇄적입니다. 브랜드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 또는 브랜드가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되니까요. 따라서 전용 서체로 만든 폰트는 비공개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카드의 전용서체 Youandi 폰트는 무료 다운로드가 불가능하며, GE Inspira의 경우는 개인적 사용으로만 라이센스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리브랜딩을 한 젠틀몬스터의 경우, 로고 디자인 변경과 함께 새로운 전용 서체를 발표했습니다.





진주로 유명한 일본의 Tasaki 역시 로고 리뉴얼과 전용서체 개발이 함께 이뤄졌습니다. Tasaki의 경우 로고와 동일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세리프 서체와 모던한 이미지의 산세리프 서체를 함께 개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너무 패션 브랜드 위주의 소개가 되는 것 같아 다른 업종에서도 대표 사례를 골라 보았습니다. Jidu는 중국의 네이버, 바이두와 자동차 제조사 지리가 합작하여 설립한 EV 브랜드입니다. 디지털을 상장하는 픽셀을 컨셉으로 디자인된 개성있는 로고와 전용서체가 인상적입니다.






2.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원화한 전용 서체 디자인 + 폰트 비공개


브랜드 로고와 별개의 서체 디자인을 개발하되, 폐쇄적인 정책을 가진 사례입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전략일 수 있는데요, 로고와 다른 고유한 전용서체를 개발함으로써 시각적 자산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브랜드 지정 서체 정책과 비교해서 살펴보면 그 장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브랜드 지정 서체는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Noto Sans, Helvetica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있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서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 활용성 제고에는 가독성 확보가 필수이죠. 그런데, 아무래도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연계한 전용 서체는 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독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활용성 측면에서도 제품명이나 헤드 카피 정도에 사용하는 것에 그치고요. 그래서 전용서체가 가독성을 갖되 우리 브랜드만의 차별성과 고유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2번 전략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최근 리브랜딩한, 로고 디자인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화제가 되고 있는 Massimo Dutti는 로고와는 별개의 전용 서체를 개발했습니다. 세리프 타입의 Massimo 서체와 산세리프 타입의 Dutti 서체입니다. 서체 패밀리가 정말 다양해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전용서체 디자인이니 꼭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Massimo Dutti의 새 로고타입보다 전용서체가 더 예뻐서 1번 전략을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Massimo Dutti의 의도는 추후 케이스 스터디가 발표되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제품 디자인에서 전설적인 브랜드, Braun은 2022년 새롭게 전용서체를 개발했습니다.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꺼예요. 기존 지정서체로 사용되던 Neue Helvetica를 대체하는 전용서체입니다. 디테일을 조정함으로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간접적으로 연계한 것이 특징입니다. Braun의 로고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유명한데요, 다만 최근에는 이렇다할 히트 상품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뒤쳐진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전용서체 개발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의 리프레시 및 강화를 꾀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3.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연계한 전용 서체 디자인 + 무료 폰트 공개


3번과 앞으로 설명할 4번 모두 무료 폰트를 공개하는 사례들입니다. 무료 폰트 공개는 국내 브랜드에서만 보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브랜딩 보다는 마케팅 성격이 더 큰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자유롭게 브랜드 전용서체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용/남용 등의 리스크를 방지하기보다는, 인지도와 친근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여기어때의 경우 로고 디자인과 100프로 같은 것은 아니지만, 로고 디자인의 특징이 대부분 반영되어 있어요. 가끔 전용서체로 타이핑한 '여기어때'를 브랜드 로고로 착각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점이 3번의 리스크라면 리스크라고 할 수 있어요.





스포카의 경우 무료 폰트 공개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인 사례입니다. 사실 저도 스포카라는 기업을 폰트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요, 스포카는 소상공인 대상 식자재 플랫폼을 운영하는 B2B기업입니다. B2B 기업이 비즈니스 고객이 아닌 일반인에게 브랜드를 알리기란 쉽지 않은데요, 비싼 광고 없이 (그렇다고 전용서체 개발 비용이 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하는 말이예요.) 디자이너 및 웹 개발 관련자들에게 기업 브랜드를 인지시킨 성공적 사례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높인 인지도가 기업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스포카에 문의해야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겠지만요, 간접적인 기업 이미지 제고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웹사이트 개발로 무료 폰트를 알아보던 음식점 사장님이 스포카 폰트를 통해 스포카라는 기업과 서비스를 알게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스포카 서체는 가독성이 높아 활용하기 좋은 것이 장점이지만, 상대적으로 스포카만의 고유한 이미지는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네요. (솔직히 스포카 로고가 전혀 떠오르지 않아요.)






4.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이원화한 전용 서체 디자인 + 무료 폰트 공개


앞서 설명했듯이, 4번은 타이포 브랜딩이 아니라 타이포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작은 아마도 배달의민족이 아닐까 싶은데요, 배달의민족의 경우 일관성 있게 독특한 기업 문화를 반영한 서체들을 발표해오고 있기에 브랜딩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그 외의 경우는 솔직히 브랜드와의 연계성을 도무지 알 수 없더라고요. 특히 최근 전국의 지자체에서 발표하고 있는 지역 전용서체들은 잘 구분도 안 가거니와 실제 사용자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사용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상승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아래의 사례는 그나마 브랜드의 고유성을 담으려 한 사례로 골라보았습니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발표한 글림체는 배민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긴 서체예요.




롯데리아촵딱체는 2개의 서체 촵땡겨체딱붙어체를 줄여서 부르는 명칭인데요, 롯데리아의 스피릿을 담았다고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잘 와닿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롯데리아가 지향하는 이미지가 제가 경험해온 롯데리아와는 다소 세대 차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서체명조차 발음할 때 혀가 꼬이는 저는 롯데리아의 타겟 연령층이 아닌 것입니다.






이상으로 브랜드 전용 서체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봤는데요, 유형 선택의 기준은 아래 항목이 될 것 같습니다.


  • 독특한 브랜드 개성을 강조할 것이냐? 활용성 및 사용성을 고려할 것이냐?
  • 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할 것이냐? 단기적으로 화제를 만들어 인지도를 높일 것이냐?


특히 무료 폰트 공개의 경우는 나중에 비공개 라이센스로 전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브랜드 관리자로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다양한 무료 전용서체 개발로 폰트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참 좋지만, 한글날 우후죽순으로 발표되는 브랜드 전용서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를 통해 각 브랜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축적할 수 있는 브랜드 자산은 무엇인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타이포 브랜딩을 지향하는 바입니다만, 브랜드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 기준은 달라질 수 있겠죠.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관련한 다양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2024 A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