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여년 전, 대한민국의 마케팅 및 브랜딩에서 '츠타야 열풍'이 불었습니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벤치마킹'이라는 미명 하에 너도나도 츠타야 따라하기를 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도 그 열풍에 휩쓸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 츠타야 매장을 체험해보겠다는 목적만으로 일본을 방문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츠타야가 변하고 있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국내의 수많은 츠타야 따라하기 매장 및 공간이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를 누군가는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스타일'만 따라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국은 츠타야 자체의 라이프스타일도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반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콩깍지가 벗겨진 눈으로 냉정하게 츠타야 브랜딩의 면면을 살펴보니 훌륭한 공간 기획이었지만, 결코 훌륭한 브랜딩은 아니었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판단하게 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아요.
1. 츠타야의 변천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츠타야를 프리미엄 서점 브랜드로 알고 있을 것이예요. 하지만 츠타야는 책 및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했고, 동일한 업종으로 가장 많은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츠타야란 대여점이란 인식이 더 클 것이예요.
<1983년 대여점으로 시작한 츠타야 ©Culture Convenience Club>
츠타야의 운영사 CCC - Culture Convenience Club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어요. 책,비디오 등의 문화(Culture)를 편의점(Convenience)처럼 편리하게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의미가 훨씬 미려하게 확장되었습니다.
<1993년 - 2003년 츠타야 로고>
제가 처음 츠타야 브랜드를 알게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요, 바로 위의 로고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재직했던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국내 도서&DVD 렌탈 전문점 브랜딩 제안을 준비했고, 관련하여 해외 유관 사례를 찾아보게 되었거든요. TV와 사람얼굴을 결합한 심볼이 일본스러우면서도 재밌다고 생각했고, 유달리 기억에 남았어요.
<2011년 오픈한 다이칸야마 T-Site 츠타야 서점 © Culture Convenience Club>
그런데 10여년이 훌쩍 지나 다시 츠타야라는 이름을 빈번하게 듣게 되었는데, 되게 고급스러운 서점이라는 것이예요. 기존 알고 있던 동네 대여점 브랜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기에, 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브랜드라고 오해하게 되었어요. 특히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도서 및 비디오 대여점이 종적을 감췄기에, 일본에서도 당연히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참고로, 일본은 현재까지도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
이 츠타야 서점을 다룬 글과 책은 너무나 많기에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2015년 오픈한 츠타야 가전 © Culture Convenience Club>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성공에 힘입어 츠타야는 서점과 가전매장이 결합된 츠타야 가전을 론칭합니다. 역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조닝으로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고, 국내 가전 리테일 매장들이 너도나도 벤치마킹했었죠.
그런데 2019년 일본 불매운동 및 COVID19라는 글로벌 대형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츠타야 라는 이름을 듣기가 어려웠는데요, 엔데믹으로 전환한 현재 들려온 소식은 놀랍게도 츠타야 매장의 리뉴얼이었습니다.
<2024년 4월 리뉴얼 오픈한 츠타야의 시부야 매장 © Culture Convenience Club >
도쿄 시부야는 엄청난 유동인구 및 관광객으로 인해 브랜드들의 전략적 매장이 즐비한 곳입니다. 츠타야의 시부야 매장 역시 브랜드를 상징하는 공간이었기에, 이번 리뉴얼이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시부야 매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관련 글을 읽어 주세요.
위기 속의 츠타야 매장, 24년 만의 리뉴얼 by 언폴드
이 시부야 매장을 위해 Hara Kenya가 디자인한 새로운 츠타야의 로고입니다. 츠타야 로고가 완전히 바뀌는 것인지, 이 매장만을 위한 로고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지금까지 츠타야 브랜드 운영으로 미뤄보아 단순 시부야 매장만을 위한 로고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시부야 매장의 리뉴얼 배경에 관한 인터뷰가 매우 충격적이었는데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너도나도 따라했던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결국 허울 좋은 실험에 불과했던 것이죠. 실제로도 츠타야의 매장 수는 2012년 1400여개에서 현재 800개로 급감했고, 츠타야 운영사 CCC의 매출도 COVID19 이전의 1/3 이하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 내 도서 및 DVD 대여점의 급감 내지 소멸은 벌써부터 예견되어왔던 사실입니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는 10년 전 이미 소멸했죠) 또 전자책의 보편화로 인쇄출판업 및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점도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츠타야 운영사 CCC 가 T-Site와 츠타야 서점을 기획한 이유도 이로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 외에도 피트니스 센터 및 공유 오피스 등 다소 생뚱맞은 분야로 진출한 것 역시 업종 다변화를 통해 생존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과 츠타야 가전이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하락세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력으로 했던 사업 분야가 하향세로 전환하고, 심지어 소멸 위기에 처했을 때 기업이 지속가능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저는 가장 대표적이자 강력한 방법이 브랜딩이라고 믿습니다. GE와 IBM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의 큰 변화 속에서 최종적으로 살아 존재하는 것은 브랜드이거든요.
그렇기에 저는 츠타야가 마케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브랜딩적으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츠타야의 브랜드 확장 및 변천사
위에서는 츠타야의 대표적인 사례 중심으로 변천사를 살펴봤구요, 이제 브랜드 중심으로 변천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츠타야의 브랜드 확장이 이뤄진 것은 2003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초기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츠타야의 롯본기 플래그십 스토어가 2003년에 시작되었거든요. 대여점에서 서점으로 확장한 것도 2003년부터인 것 같습니다. (주의! 웹서치로 추측한 정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히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려요.) 롯본기 매장이 최초로 서점과 카페가 결합된 매장이었는데, 무척 성공적이었다고 해요. 이 성공을 바탕으로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서의 공간 기획이 시작되었고 2011년 다이칸야마 T-Site와 츠타야 서점이 런칭되었을 것입니다.
이 후로 츠타야 브랜드의 다각화는 업종을 넘나듭니다. 가전에서부터 피트니스 센터, 공유 주거, 공유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요, 이 모든 것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키워드로 엮을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아우르지만, 결국 그 무엇도 아닌 공허한 키워드이기도 하거든요.
2024년은 츠타야 브랜드의 대 전환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일단 앞서 설명드린 츠타야 시부야점의 리뉴얼, 그리고 츠타야 멤버십을 대표했던 T-Point가 금융회사와 협업을 꾀하며 V-Point로 변화한 것이 그 이유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 저는 츠타야의 브랜드 전략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3. 츠타야의 브랜딩 전략은 무엇일까?
츠타야의 브랜드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솔직히 제가 익히 알고 있던 브랜딩 전략과는 너무나도 다른 양상에 깜짝 놀랐습니다. 크게 3가지 측면으로 설명드릴께요.
브랜딩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츠타야의 브랜딩 전략은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같은 '츠타야'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현재 공존하는 브랜드들의 로고타입 디자인이 너무나도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제가 츠타야 서점을 처음 접했을 때 '같은 이름 다른 브랜드'라고 오해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츠타야 서점의 로고는 현재 총 3가지가 있는데요, 아마도 직영 및 프랜차이즈 등 운영 방식에 따른 차별화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설마 소비자가 로고 디자인을 보고 운영 방식을 구분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겠죠?
또 프리미엄 & 플래그십 매장인 츠타야 서점과 츠타야 가전의 로고 디자인이 얼핏보면 유사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것도, 제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신규 매장을 낼 때마다 달라지는 로고 디자인은 해당 매장의 개성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할지는 몰라도 통합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거든요. 향후 브랜드의 확장성이나 연속성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매장들인 하나의 '실험'에 불과했음을 반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로고타입과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브랜드 네임을 뺀 시각적 상징물인 심볼들만 모아봤는데요, T와 V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제각각입니다.
물론 각 브랜드 별 타겟 고객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같은 츠타야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브랜드들이 공통적인 '츠타야스러움'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2011년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CCC가 기획한 복합 문화공간 T-Site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T-Site는 서점 외에도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시설이 어우러진 더 큰 개념의 브랜드 공간인데, 츠타야 서점의 인테리어와 로고 디자인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 © Culture Convenience Club / Nippon Design Center >
CCC는 멤버십 브랜드인 T를 마스터 브랜드로 키워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브랜딩 케이스 스터디에 보면 멤버십 카드에 T-Site 및 T Card 라는 브랜드가 존재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T-Site와 츠타야 서점의 디자인이 앞서 설명드렸듯이 한 가족(Family)임이 보여지지 않았고, T 심볼 디자인은 실제 공간의 분위기와도 전혀 융화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T-Site가 아닌 츠타야 서점만을 기억한 것은 너무나 당연할지 모릅니다.
Hara Kenya가 디자인한 츠타야 서점의 로고와 내부 사이니지, 어플리케이션 디자인이 매우 아름답고 차별화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상위 브랜드이자 대표 브랜드인 T와 연계성을 갖지 못한 점에서 브랜딩 전략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츠타야 멤버십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T-Point가 V-Point로 변화하게 된 현재, 대여점, 서점, 라이프스타일 공간 등 모든 츠타야를 통합하여 대표하는 브랜드는 과연 무엇으로 봐야 할까요?
4. 츠타야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통해 축적됩니다.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달라질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성공적인 브랜드는 이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브랜드 에센스'라고 정의합니다.
성공하지 못한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제안'은 브랜드 에센스로서 지속가능할까요?
새로운 컨셉 '덕질'은 츠타야의 새로운 브랜드 에센스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브랜드 에센스가 존재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