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모든 산업 분야에서 브랜딩이 매우 중요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와닿지는 않을 것이예요. 저도 실제로 많은 클라이언트 분들이 우리 산업이 패션이나 뷰티가 아닌데 굳이 브랜딩을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해 왔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패션과 뷰티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브랜딩이 핵심이 되는 분야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뷰티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제가 브랜딩을 시작했을 당시에 국내 뷰티 산업이 그다지 발전하지는 않았었어요. 화장품은 무조건 프랑스와 일본 브랜드를 최고로 생각했고, 좋게 말하자면 벤치마킹으로서 따라하기 급급했죠. 하지만 어느새 무럭무럭 성장하여 세계인이 인정하는 K-뷰티가 된 것이 무척 감개무량합니다. COVID19 직전은 K-뷰티가 절정을 이뤘던 시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예요. 국내 뷰티 브랜드들이 최고 매출을 경신하며 급성장했거든요. 하지만 이 성장을 이끌어낸 중심축이었던 중국 시장이 경기침체와 함께 애국소비 성향으로 돌아서면서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최근 2년 간 국내 뷰티 업계가 어렵다는 언론 기사를 종종 접했는데요, 특히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먼저 숫자로 가볍게 살펴 볼께요.
급성장하던 매출과 영업이익이 COVID19를 겪으며 내림세로 돌아섰는데요, 여전히 영업이익은 플러스이지만 과거의 영광과 대비되어 하락세가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특히 마이너스 성장은 기업 가치에 매우 치명적인 것이거든요. 2023년은 엔데믹으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매출은 10.5% 감소, 영업이익은 무려 44.1%가 감소했습니다.
LG생활건강은 일견 아모레퍼시픽 그룹보다는 조금 낫다고 볼 수 있는데요, LG생활건강은 뷰티 뿐 아니라 생활제품과 음료 사업부까지 포함한 실적이기에 뷰티 부문만 떼어 보면 더 심각한 실적입니다. 2023년 뷰티 사업부의 매출은 12.3%감소, 영업이익은 52.6%가 감소했거든요. 특히 4분기의 실적이 매출 23.7%감소, 영업이익이 무려 90.8%감소로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리브랜딩으로 위기탈출을 모색하는 아모레퍼시픽
뷰티 브랜드들은 시간에 따라 노후되는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브랜드도 늙습니다!) 정기적으로 리브랜딩을 수행하는데요, 최근들어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들이 유독 활발히 리브랜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새로운 브랜드도 꽤 많이 런칭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리브랜딩 사례만 살펴볼께요. (여기서 잠깐, 브랜드비 웹사이트 검색창에서 기업 이름으로도 검색이 가능한 것을 알고 계시나요? 검색창에 '아모레퍼시픽'을 입력하면 아모레퍼시픽이 보유한 브랜드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코멘트는 제 개인적 생각과 느낌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럭셔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난 시도, AP
자연주의 컨셉을 버리고 SF로 변신한 이니스프리
갑자기 장난스럽고 발랄해진 프리메라
급격히 어려진 마몽드
한방 컨셉을 버려버린 려
남성적 이미지에서 레트로로 변화한 비레디
친근함에서 세련됨을 추구하는 해피바스
부드러움에서 포멀(Formal)함으로 변한 아모스
기업 아이덴티티 적용에서 사옥 아이덴티티를 적용으로 바뀐 아모레 카운셀러
개인적으로 위 리브랜딩들이 무척 당황스러웠는데요, 제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던 기존 브랜드 이미지와 너무나 다른 변화였기 때문이예요. 물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뷰티 트렌드를 반영한 브랜딩 전략이리라 추측되며, 뷰티 전문가가 아닌 제가 바라보는 시각은 뒤쳐진 진부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브랜딩 후의 모습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 뿐인 것일까요? 이 일련의 리브랜딩들을 통해 아모레퍼시픽이 재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함께 지켜보아요.
예측되었던 위기,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과 달리 LG생활건강은 리브랜딩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않아요. 몇몇 브랜드가 리브랜딩 중이라는 기사를 접하긴 했는데요,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브랜딩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 과거의 브랜딩 사례를 살펴보기로 해요. 당시 절로 고개가 갸우뚱했던 이상한 브랜딩들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위기의 전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끼워맞춘 것이라고, 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위 이미지의 간판을 보셨을 것이예요. 저는 처음 봤을 때 "네이처 리퍼블릭 짝퉁이 오픈했네!" 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당시 뷰티 로드샵 브랜드 중 '네이처'라는 키워드는 이미 네이처 리퍼블릭이 강력하게 선점하고 있었기에 후발 주자는 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거든요. 더 중요한 점은 디자인이 너무 조악했기에(저 심볼에서 뻗쳐나온 녹색 줄기 어쩔거야!) 당연히 영세 화장품 가게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접하게 되고, 특히 LG생활건강이라는 대기업의 로드샵 대표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디자인이 컨펌을 받을 수 있지? 내 심미안이 잘못된 것인가? 저런 브랜딩이 시장에 통한다면 앞으로 나는 먹고 살수가 없을텐데?
저의 브랜딩 세계관을 흔든 이 충격적인 브랜드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디자인은 조금 개선이 되었습니다.
왼쪽: 2016년 로고 / 오른쪽: 2019년 리뉴얼된 로고 (그런데 e는 왜 줄이 안 맞는 것이죠?)
LG생활건강은 그런 저에게 두 번 째 폭탄을 선사했습니다.
LG생활건강이 2010년 더페이스샵을 인수한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수 후 경영이 악화되자 리브랜딩을 했는데요, 역시 기존 브랜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동떨어진 브랜딩이라 의아했습니다만, 네이처 콜렉션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용납할 수 있는 디자인 완성도를 가졌거든요.
왼쪽: 인수 전 로고 / 오른쪽: 2015년 인수 후 리뉴얼한 로고 (ps. 현재 로고는 다시 리뉴얼된 로고입니다.)
두 번째 폭탄은 더페이스샵 리브랜딩 후 새롭게 런칭한 FMGT라는 브랜드였습니다. 더페이스샵 제품 중 '잉크래스팅 파운데이션'이라는 인지도도 높고 꽤 인기가 있는 라인이 있었는데요, 이를 똑 떼어서 색조 전문 브랜드로 키우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기존 익숙한 제품 패키지에 새롭게 등장한 FMGT 로고를 보았을 때, 저는 순간 "아, 내가 위조품을 샀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원제품 자체가 가성비 좋은 저렴이 제품이었기 때문에 위조품이 만들어진다는 게 말이 안되었죠. 그래서 직업병으로 브랜드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브랜드 설명을 읽는 순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더페이스샵의 새로운 브랜드로 "Fashion Makeup Group Thefaceshop"의 이니셜을 딴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2019년 당시, 이런 콩글리시 브랜드 네임이 등장하리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런 브랜드 네임이 어떻게 컨펌을 받을 수 있지? 네이미스트는 왜 존재하는 것이지? 이런 브랜딩이 시장에 통한다면 나는 네이밍을 하지 않을테다!
로고 디자인은 나쁘진 않았지만, 모브랜드인 더페이스샵과의 어떤 연계성도 찾아볼 수 없었죠.
역시나 놀랍게도 이 브랜드는 현재까지도 존재하며, 브랜드 의미는 Fun but Meaningful, Gentle but Transformative로 변경되었습니다. 제가 네이티브가 아니여서 그런지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위 두 개의 폭탄과도 같은 브랜딩은 제게 'LG생활건강은 브랜드 전략이 없다'는 심각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실적은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의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위기가 드러난 지금 알아보니, 인수합병으로 키워왔던 성장이었더군요. (관련 기사 : '20년간 2조5000억' 성장 기폭제 작용한 M&A by 더벨) 외형 키우는데 급급하여 브랜딩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 브랜딩이 문제여서 위기인 것일까, 위기여서 브랜딩이 문제인 것일까?
오랫동안 브랜딩을 해 오면서 단순히 좋은 네임과 로고 디자인만으로 브랜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마케팅은 물론이고, 기업의 조직문화도 브랜드의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다만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각각의 중요도와 비중을 수학공식처럼 딱딱 나눌 수 없다는 점이 브랜딩의 중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뷰티 산업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의 브랜딩 현황을 살펴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두 기업의 위기는 브랜딩의 문제이면서, 또 브랜딩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고요. 특히 브랜드 개발에 특화된 외부 브랜딩 전문가로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브랜딩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현재 위기를 타개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