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로운 브랜드 사이트를 둘러보다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어요. 세계 최초 알루미늄 캔에 든 생수를 론칭한 브랜드, OpenWater인데요, 어떻게 보면 '흑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창업 초기 브랜드 네임을 이야기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창업 팁: 당신의 브랜드 네임은 당신의 생각만큼 영리하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네임이었을까요?
바로 GreenSheep이라는 네임이었는데요, 20여년이 넘게 네이밍을 해온 저로서도 어떤 의미와 의도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뭔가 친환경임을 표현하고 싶다는 것은 알 것 같은데, "녹색 양"과 생수 제품, 그리고 탄소절감을 연관지을 수는 없었어요. 창업자도 바로 그 점을 깨달았고 2년 만에 네임을 변경하게 됩니다. 새로운 네임은 좀 더 명확하게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OpenWater 창업가의 실수는 스타트업 브랜딩에서 종종 보이는 사례입니다.
사실 누구나 창업 할 때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비전이 너무나 멋지고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하죠. Google이나 우아한형제들 등과 같은 엉뚱한 네임을 가졌음에도 성공한 사례를 본보기 삼아 차별화된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만 있다면 브랜드 네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사업을 영위해 나가면서 곧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브랜드 네임은 당신의 생각만큼 영리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들의 브랜드 네임 변경 사례를 크게 2가지 타입으로 분류해봤어요. 왜 바꿔야만 했는지 함께 살펴보아요.
1. 직관적이지만 차별화 못하는 네임
Dovetail은 건축 및 공학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무판을 꽉 물리게 만들어주는 비둘기 꼬리 모양의 이음 방식을 뜻합니다. 또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딱 들어맞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어요. 무척 흥미로운 네임이죠? 의미도 좋구요. 그런데 문제는 이 단어를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Dovetail이라는 단어를 Startup과 함께 검색해 보면 꽤 많은 회사들이 등장해요. 또 IT 분야 스타트업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요, 이 중 하나는 동명의 다른 회사로 오인된다는 이유로 브랜드 네임을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원래의 Dovetail로 돌아가보면, 이 스타트업은 기업의 재무평가에 탄소중립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제공하는데요, 새로운 네임 Unwritten은 탄소중립 요소가 기존 재무제표에 쓰여지지 않은 숨은 가치 모델임을 표현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Dovetail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기업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eafood Reboot는 대체육 브랜드입니다. (대체육이 궁금하시면 클릭!)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산물 대체육이죠. 그런데 많은 대체육 스타트업이 공통적으로 접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초기에는 단순 기술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이 정착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팔려야만 하는 것이죠. 대체육 기술로 해산물을 리부팅하겠다는 의도는 참 좋지만, 솔직히 소비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대체육이 얼마나 맛있는지, 합리적인 가격인지니까요.
새로운 네임 Olala!는 프랑스어의 감탄사로 소비자가 좀 더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네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Advanced Sport Instruments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관적으로 기술을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여러분은 이 네임을 보고 도대체 어떤 기술과 제품인지 알 수 있나요? ASI는 센서가 탑재된 제품으로, 주머니에 넣고 운동을 하면 에너지 소비 등 각종 관련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네임은 '주머니에 넣는다'와 숨겨진 운동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제품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어요.
GTMHub는 OKR관리 솔루션인데요, GTM이 무엇의 약자인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검색해보니 Google Tag Manager과 Go To Market이라는 뜻이 있는데, 과연 창업자의 원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새로운 네임은 정량적인 수치를 측정하는 서비스임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어요.
LAIKA는 준법감시(Compliance) 플랫폼인데요, 기존 브랜드 네임은 아마도 관련 용어의 이니셜 조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준법감시 분야는 저같은 일반인에게는 굉장히 생소하고 난해한 분야인데요, 그래서 더욱 기존 네임이 어렵게 느껴졌어요. 물론 그쪽 전문가들은 쉽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고객은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새로운 네임 Thoropass를 봤을 때, 준법감시가 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cott's Cheap Flights는 최저가 항공 정보를 검색하여 이메일로 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여러분도 추측하셨다시피 Scott은 창업자의 이름이예요. Scott이 찾아주는 저가 비행기표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죠. 하지만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창업자의 아이덴티티와 저가항공이라는 속성에 제약될 수 밖에 없어요. Going으로 브랜드 네임을 바꾸면서 창업자가 회사를 떠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물론 Scott은 회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창업자의 아이덴티티를 가졌던 스타트업이 브랜드 네임을 바꾸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죠.
2. 창업자만 공감하는 독특한 네임
Talagent는 자산관리 및 투자가들을 위한 분석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Talagent가 어떤 의미인지 아실 수 있는 분 있으실까요? 옛날 수학 미적분 공부할 때 외웠던 탄젠트(Tangent)가 연상되기는 했는데요, 정말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새로운 네임인 Fabric은 직물을 짜듯이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치있는 정보로 재구성해준다는 서비스의 특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Trail은 다양한 디바이스를 넘나들며 게임을 하게 해주는 솔루션인데요, 솔직히 Trail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기술적인 용어일까요?
새로운 네임은 게임을 자유롭게 Play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임을 표현하고 있어요.
최근 사명을 바꾼 우리나라 기업 드라마앤컴퍼니 역시 네임만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어요. 이전 로고 밑에 쓰인 태그라인 문구로 그 의도를 추측해볼 수 있었는데요, 기업의 서비스와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명 변경 이유는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과 고객지향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일찍 바꿨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프롭테크 기업인 스매치코퍼레이션의 이전 네임인 빌리앤코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네임입니다. 창업자의 별명인가 싶기도 한데요, 프롭테크 분야에서 창업자의 이름이 중요한지는 의문이예요. (도널트 트럼프 정도는 되야 가능한 브랜딩이 아닐까요?) 새로운 사명은 맞춤 부동산을 찾아주는 서비스명인 스매치와 연계했습니다.
리체라는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음료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이름만 봐서는 통 알 수 없죠? 그래서 Sleep Shot이라는 태그라인을 항상 같이 써야 했어요.
새롭게 바뀐 네임인 코자아는 부연 설명 없이도 바로 제품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먹을사람은 한끼 대용 간편 건강식 브랜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느낌 물씬 나는 귀여운 네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브랜딩 관점에서는 그다지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중적인 제품일 수록 다양한 연령대와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할 수 있는 네임이 필요한 법입니다.
로드윈휴먼은 차량 탁송 및 물류 서비스 기업입니다. 네임 설명은 생략하도록 할께요. 창업자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솔직히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새로운 네임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상으로, 브랜드 네임을 바꿔야만 했던 스타트업 네이밍 사례들을 살펴봤어요.
물론 사업 초기에는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에, 브랜딩은 차선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올랐을 때 비로소 브랜딩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뒤늦게라도 브랜딩 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아예 안 하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요, 만약 초기부터 명확하게 브랜드를 정립했다면 어땠을까요? 브랜딩이 사업의 100퍼센트 성공을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좀 더 수월한 투자유치 및 보다 빠른 소비자 인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과정인만큼, 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고민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