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네임 개발을 할 때 클라이언트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길이가 짧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어떤 사람은 성미급한 한국사람 특유의 성향이라고 하지만, 요즘 줄임말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보면 소통의 간결성을 추구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성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짧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이름인 것은 아니예요. 솔직히 요즘 MZ세대들이 즐겨 쓰는 줄임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사람이 있나요? 줄임말을 한 번 듣고 바로 이해해서, 그 이후론 똑같은 단어를 검색해보지 않은 언어천재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짧은 네임의 장점은 부르기 쉽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기억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긴 네임은 부르기에는 혀가 꼬일 수 있지만, 어떻게 네이밍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매력적인 네임이 될 수 있어요. 오늘은 그 중 문장형 네임 사례를 모아봤습니다.
1.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이 사례는 저의 연식(이미 다 눈치채셨겠지만)이 드러나서 넣을까 말까 잠깐 고민했습니다만, 우리말로 지은 문장형 네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비록 지금은 단종이 되었지만 론칭 당시 CF와 함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브랜드입니다.
사실 식품 및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효능을 네임에 담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입니다. 식약처에서 허위정보 표기 및 과장광고로 경고가 날라올 수 있으니까요. 석류가 피부 미용에 좋다는 것은 맞지만, 이 석류 음료를 먹고 누구나 다 미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위사실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제품의 특징을 은유적으로 센스있게 표현한 네임이 바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입니다. 자매품으로 “미남은 복분자를 좋아해”도 출시되었다고 해요.
2. 유아왓유잇 (You Are What You Eat)
‘유아왓유잇’은 신세계 푸드의 식물성 식품 브랜드입니다. 처음 봤을 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식품 업계에서 이렇게 어려운 네임을 가진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 무척 놀라웠는데요, 확실히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다른 비건 브랜드와 차별화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육식주의자인 저로서는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유아왓유잇이 오롯이 채식주의자만을 타겟으로 했다면 별 문제는 안되겠지만, 최근 해외 비건 브랜드들은 성장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육식주의자들을 공략하고 있거든요. 향후 행보가 궁금합니다.
3. 디스이즈네버댓 (Thisisneverthat)
'디스이즈네버댓'은 MZ세대에게 너무나 유명하고 핫한 스트리트 브랜드입니다. 비록 제 주변에는 이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요, 우연히 이름을 듣고 “응? 도대체 무슨 뜻이야?”라는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검색해서 디자이너의 의도 설명을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패션브랜드에 사전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다 일단 저는 타겟 고객이 아니기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4. About Time We Met
About Time We Met은 호주의 샌달우드 성분으로 만든 천연 스킨케어 브랜드입니다. 디스이즈네버댓 처럼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네임입니다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컨셉임을 유추해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잔잔한 감성의 영화가 연상되네요.
5. Send it to Alex
Send it to Alex는 신경발달장애인(자폐, 난독증, ADHD 등)을 위한 고용 지원 서비스입니다. 같은 신경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두 자매가 창업했는데요, Alex는 바로 그 자매 중 한 명의 이름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부담없이 바로 연락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단순히 네임만 봐서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창업자의 스토리를 알고 보니 굉장히 설득력을 갖게 되었어요.
6. Who Knows Ginny
Send it to Alex와 비슷한 결을 지닌 네임인데요, Who Knows Ginny 역시 창업자의 이름을 딴 채용 플랫폼입니다. 특히 Ginny는 소위 "인싸"로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데요, 이를 반영한 네트워크 기반 채용 정보 획득 및 홍보가 특징입니다. 사실 많은 일들이 사람을 매개체로 발생하잖아요? 채용 역시 지인 소개로 많이 이뤄지고요. 서비스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재미있는 네임입니다.
7. The Hidden 20%
전세계 인구의 20%인 신경분열증(ADHD, 자폐증, 난산증, 난독증, 실행장애, 투렛증 등)을 갖고 있다고 해요. The Hidden 20%는 신경분열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캠페인입니다. 처음엔 비슷한 네임인 국내 음료 브랜드 “2% 부족할 때”가 연상되었는데요, 네임의 의도와 목표는 전혀 다른 케이스입니다. 특히 전 세계에 신경분열증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어요.
8. Go with Yamo
Go with Yamo는 영국의 예술문화 전시 정보 제공 플랫폼입니다. Yamo가 사람이름인지, 아니면 특정 단어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정보가 많지 않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어요. 앱을 통해 전시회를 방문하면 Yamo포인트를 모을 수 있고, 이를 기프트 숍에서 교환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간결하게 Yamo라고 표현하지 않고 굳이 Go with를 붙인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실제 오프라인 전시회를 직접 찾아보고 체험하게끔 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으로 문장형 네임 사례를 살펴보았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문장형 네임의 장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호기심과 흥미 유발 : 대부분의 문장형 네임이 명확한 뜻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아요. 이는 브랜드 슬로건과 구별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난해하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모호하다고 느낄 수 있죠. 이러한 반응들이 일부러 찾아보게 하고, 좀 더 생각해 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 동종 브랜드와의 차별화 : 대부분의 브랜드가 명사형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문장형은 단순히 형태만으로도 차별성을 갖게 되죠.
-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 : 위에서 슬로건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했지만요, 문장형이기에 슬로건과 유사한 역할 - 즉 메세지를 던져 반응을 유도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이는 NGO와 같은 대중의 관심과 참여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공공 분야에서 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요.
문장형 네임은 길기 때문에 기억이 어렵고, 커뮤니케이션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저는 반대로 정확하지 않아도 브랜드를 유추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예로 말실수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는 사례를 하나 들께요. 어떤 사람이 서초역에서 택시를 타고 "전설의고향 가주세요" 라고 했더니, 택시 기사분이 알아서 '예술의전당' 앞에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뜻이지만 유사한 문장 구조, 그리고 서초역이라는 지역의 컨텍스트가 택시기사님을 정답으로 유도한 것이죠.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 조금이라도(일부더라도) 더 기억에 남고, 찾아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네임이야말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네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