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랜 시간동안 인류와 함께 해온 음료인데요, 그만큼 전세계에 정말 많은, 다양한 맥주 브랜드가 존재합니다. 아마 전 세계 맥주 브랜드를 전부 모으면 엄청난 두께의 책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미 맥주의 전설, 마이클 잭슨 - 주의! 가수가 아닙니다 - 이 집필한 맥주 전문 도서가 있지만, 그 분의 사후에도 수많은 맥주 브랜드들이 탄생했으니까요.)
이번엔 최근 리브랜딩을 진행한 해외 맥주 브랜딩 사례를 함께 살펴보기로 해요. 맥주 브랜딩은 로고와 함께 패키지 디자인이 필수인 분야라 패키지 디자인 중심으로 사례를 보여드립니다. 기호식품이자 경쟁이 매우 치열한 제품 분야라 아름다고 개성넘치는 디자인이 많아 선정에 고민이 많았어요. 심미성은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고, 브랜딩의 성공 여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증명되기에, 일단 다양한 관점으로 맥주 브랜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 위주로 골랐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순서는 랜덤이예요.
1. Canada Dry by Wedge
Canada Dry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캐나다의 진저 에일 브랜드입니다. 무려 130여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이고, 인지도 높은 타브랜드, '아사히 슈퍼드라이' 때문에 왠지 라거 맥주일 것 같은 선입견이 드는데요, 사실 진저 에일은 이름에 맥주가 들어가지만 술이라기보다는 탄산음료, 토닉워터라고 보아야 해요.
Canada Dry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는 항상 조심스러워요. 고착화된 이미지를 새롭게 변신하는 것과 익숙함 및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거든요. 브랜딩 에이전시 Wedge는 이를 위해 백년이 넘는 역사 속의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 아카이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고 해요.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이지만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 브랜드비가 에이전시들의 케이스스터디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리는 이유입니다.
요즘 하이볼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캐나다드라이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2. Tuborg by Robot Food
Tuborg는 덴마크의 라거 브랜드입니다. 사실 덴마크는 '칼스버그 Carlsberg'가 더 유명한데요, Tuborg 역시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브랜드입니다. 특히 병맥주의 뚜껑이 따개가 달린 것으로 유명하고, 또 그것이 브랜드의 강력한 시각적 자산으로 자리잡았어요. 다만 제품 라인업 확장 시 일관성 없는 제각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시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죠.
Robot Food는 브랜드의 상징인 따개가 달린 병맥주 뚜껑의 형태를 전체 디자인 시스템의 주축으로 삼되, 제품 별 특징은 색상 및 로고 타입으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사실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Tuborg의 병뚜껑을 알지 못할 것이예요. (저도 처음엔 수류탄을 떠올렸으니까요.) 하지만 왕관과 결합된 독특한 프레임 형태는 Tuborg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3. Stella Artois by Jones Knowles Richie
Stella Artois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맥주이죠. 최근에 리브랜딩을 했고, 또 글로벌 에이전시 JKR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언급을 했었어요.
이번 리브랜딩에서 로고 자체는 큰 변화 없이 서체와 형태의 정교화가 이뤄졌는데요,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나름 파격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맥주 캔 패키지 디자인에 로고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배치한 것이죠! 대부분의 맥주 캔 디자인은 로고를 가로로 배치해요. 맥주 병과의 디자인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있고, 세로로 진열되는 맥주 캔에서 브랜드 네임을 읽기 편하게 위함이죠. 그런데 Stella Artois는 태생적으로 이름이 다소 긴 편이라 상대적으로 로고가 작게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과감하게 세로로 배치한 로고는 크기가 훨씬 커졌고, 시인성 및 주목도에서 강점을 발휘합니다. 물론 기존 패키지 디자인의 하얀 여백의 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수많은 브랜드의 각축장인 편의점 냉장고를 떠올려 보세요.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이 가는 디자인임은 틀림 없습니다.
4. Moosehead by Conflict
Moosehead 역시 유서깊은 캐나다의 맥주 브랜드입니다. 올해 156년이 되었네요. Moose는 북미의 큰 사슴을 뜻하는데요, 브랜드 네임을 직역하면 '사슴머리'입니다. 그래서 항상 로고와 패키지에 이 사슴머리 심볼이 들어 있었어요. 이번 리뉴얼이 인상적인 이유는 '사슴머리'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되 표현을 현대적이고 과감하게 했다는 점이예요. 기존 패키지 디자인을 찾아보면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라인드로잉의 사슴머리 일러스트 디자인을 볼 수 있는데요, 리뉴얼된 디자인은 형태를 단순화했지만 더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줍니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색상 선정도 인상적이예요.
5. Tooheys by Weave
Tooheys(투이즈) 역시 사슴머리를 상징으로 하는, 호주의 유서깊은 맥주 브랜드입니다. 위의 Moose와는 사슴 종류가 달라서 뿔 모양이 다른데요, 브랜드 네임은 창업자의 이름으로 사슴과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습니다만 오랫동안 사슴머리를 상징물로 사용해왔어요.
그런데 이번 리뉴얼에서는 사슴머리 심볼을 과감히 삭제하고 브랜드와 제품명을 강조하는 디자인 전략을 채택했어요. 사슴머리 대신 하단에 사슴 전체를 그린 일러스트를 넣었구요. 아직 상세 케이스스터디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정확한 의도는 파악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추측건대, '사슴머리'가 상징하는 고전적인 사냥, 동물박제의 이미지가 현대에는 그다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사슴 머리가 아닌 온전한 사슴을 그려 넣음으로서, 사슴이 갖고 있는 자연과 역동적 이미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죠.
6. James Squire by Landor&Fitch
James Squire는 호주의 수제 맥주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네임인 James Squire는 호주에서 최초로 맥주를 만든 사람이라고 해요. 무려 18세기 인물로, 단순히 년도만 계산하면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브랜드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양조장이 현재까지 남아있는지, 또 어떤 브랜드인지는 알 수 없고요, 수제 맥주 James Squire는 그의 스토리를 따서 만든 신생 브랜드입니다. 아마도 클래식한 손글씨의 로고 디자인은 James Squire의 진짜 글씨체가 아닐까 싶어요.
다만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가 넘쳐나는 맥주 시장에서,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차별화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James Squire는 스토리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삶과 정신을 표현하는 데 포커싱했습니다. 이미 유추하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James Squire는 영국 태생으로 범죄를 저질러 호주로 유배를 온 사람입니다. 죄수에서 맥주 양조를 통해 성공적 기업가로 변신한 인물이죠. 제품명 위에 띠를 두르고 다시 제품명을 기입한 디자인이 간접적으로 아이덴티티를 표현합니다.
7. Yau by Design Bridge
Yau는 홍콩의 수제 맥주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네임은 친구를 의미하는 한자 '우友'를 광동어로 발음한 것입니다. 홍콩은 엄청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시인데요, 따라서 대부분의 유통되는 식품들이 수입입니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구요. Yau는 홍콩에서 만든 수제 맥주라는 점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고, 홍콩의 음주 문화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패키지 디자인에서 젊고 유머러스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변신했는데요, 독특한 일러스트와 다소 파격적인 색상은 일견 맥주스럽지 않은 느낌을 줍니다. 아마도 Yau의 메인 타겟은 홍콩시민이고, 외국인인 제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홍콩에 가면 한 번 쯤 체험해보고 싶은 맥주 브랜드입니다.
8. Sunday Beer by Young Jerks
Sunday Beer는 뉴욕을 기반으로 한 수제 맥주 브랜드입니다. 역시 다소 맥주스럽지 않은 패키지 디자인인데요, 바로 제품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Sunday Beer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맥주를 추구하는데요, 패키지 하단에 쓰인 "Light & Tight"가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너무 쓰지 않고, 낮은 칼로리의 맥주입니다. (하지만 물로 희석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일요일에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 나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맥주, Sunday Beer 입니다.
9. Ceria by Mother Design
많은 맥주 브랜드들이 제품 라인업 다양화로 무알콜 맥주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Ceria는 모든 제품 라인이 무알콜인, 알콜프리 수제 맥주 브랜드입니다. (주의! 대마초 성분이 들어간 제품 라인이 있습니다.) 브랜드 네임은 대지의 여신 Ceres에서 유래했는데요, 이를 여신 일러스트를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존 패키지는 전형적인 맥주스러운 디자인이었는데요, 무알콜인 제품 특성을 표현하는 데 제한적이었어요. 새롭게 도입된 색상 시스템은 기존 맥주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색상인데요, Ceria의 차별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로고타입 및 일러스트의 심미성이 뛰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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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맥주를 좋아하지만, 디테일한 맛의 차이를 구분할 만큼 매니아는 아니예요.
다만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면 항상 시도해보는 편이죠. 그런 저에게 있어 맥주 선택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패키지 디자인입니다.
우리나라 맥주 시장도 과거 양대 국산 브랜드로 양분되었던 시장에서 다양한 수입맥주, 새로운 국내 수제 맥주의 출시로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다만 패키지 디자인은 아직까지도 높아질 대로 높아진 소비자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주맥주의 등장이 화제가 되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차별화된 패키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최근 제주맥주가 어렵다는 기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더라고요. 제주맥주가 더 잘 되어야 다른 맥주 브랜드들도 분발해서 다양하고 차별화된 패키지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할텐데 말이죠.
언젠가 훌륭한 국내 맥주 브랜딩 사례들을 모아 소개글을 쓸 날이 오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