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비를 운영하면서 새삼 깨닫습니다. 세상은 넓고 브랜드는 많다! 라는 것을요. 

브랜드 관련 글을 쓰면서 빠질 수 없는 분야가 바로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일 텐데요, 워낙 브랜드 스토리를 다루는 매체 및 채널이 많은지라 조금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유명하거나 소위 '뜨는' 브랜드을 다루는 콘텐츠는 너무 많아서, 브랜드비가 써봤자 영향력 없는 컨텐츠 중복 생산이 아닐까 하는 우려심이 있었어요. 사실 방문자나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컨텐츠를 다루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따라하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고유성과 차별성을 고민하는 브랜딩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동안 Special Features에서 다루는 브랜드 소개 글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요, 이번엔 정말 흥미로운 브랜드를 발견해서 꼭 독자 분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음식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핵심 재료(?)를 생산하는 반려동물을 위한 제품 브랜드, Omlet(이하 오믈렛)입니다.






디자인과 학생의 졸업작품에서 시작하다


 


오믈렛의 시작은 2003년 Royal College of Art 졸업작품 전시회였습니다. '닭을 반려동물로 키울 수 없을까?'라는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졸업작품은 창업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James Tuthil, Johannes Paul, Simon Nicholls, William Windham의 디자인과 학생 4명이 설립 멤버인데요, 디자이너가 만든 회사답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닭을 반려동물로 키운다고?


 


사실 저는 시골 출신이라 어릴 때 마당에서 닭을 키워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닭이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마 도시 생활에 익숙한 대다수의 한국인이 저와 다르지 않을 것이예요.

그런데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 많은 영국에서는 닭을 키우고자 하는 니즈가 많았던 모양이예요. 좀 더 쉽고 편리하게, 또 안전하게(영국에서는 여우가 닭을 노린다고 합니다.) 닭을 키울 수 있는 제품의 출시는 곧 화제가 되었어요. 이 제품이 바로 오믈렛의 시그니처인 Eglu 닭장입니다. 지금까지 15만개 이상 판매되었다고 해요.

아마도 초기에는 반려동물 제품이라기보다는 매일 닭이 낳는 신선한 계란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아요. (브랜드 네임을 '오믈렛'으로 정한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반응을 살펴보니, 의외로 반려동물로 닭을 키우는 고객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닭장 외에도 '반려동물' 닭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게 되는데요, 위 이미지의 High-Vis Chicken Jacket은 보온 기능과 야간 보호 기능을 갖춘 반려동물 의상입니다. 이 외에도 닭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많아요. 특히 자동 출입문(닭을 위한!)은 '이런 것까지 만든다고?!'라며 혀를 내두르게 했어요. 닭에 정말 진심이었구나 싶더라고요.





반려동물을 위한, 반려동물에 의한 디자인


그런데 오믈렛이 오로지 닭을 위한 제품만 만들었다면 20여년간 지속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믈렛은 설립멤버가 모두 디자이너라는 특장점을 살려 다양한 반려동물을 위한 제품들을 개발해 왔어요.

최근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펫팸족' '펫코노미' 등의 단어가 등장했는데요, 하지만 반려동물 제품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품 카테고리도 귀엽고 예쁘장한 옷이나 장난감, 쿠션, 침대 등에 한정되어 있었고, 디자인적인 차별화라고 한다면 패브릭 패턴, 좀 더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오믈렛의 제품은 독특한 제품 카테고리를 개척할 뿐 아니라, 기존 카테고리 제품을 디자인해도 한 끗이 다르더라고요.







토끼장과 토끼굴 Eglu Go Rabbit Hatch


토끼가 굴을 파는 습성이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토끼장 뿐 아니라 이를 굴처럼 생긴 통로로 연결하는 제품을 만들어냈어요. 이걸 보고 또 저는 생각했죠, 이 사람들, 토끼에도 진심인데?







관리가 편한 햄스터장







기존 새장보다 더 많은 비행공간을 확보한 새장, Geo Bird Cage







집사와 고양이 모두 즐거움을 선사하는 LED 스크래처







벌도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 Beehaus Beehive






어때요? 오믈렛만의 특징과 차별점이 보이지 않나요?


후드모자가 달린 강아지옷, 패스트푸드 모양의 장난감 등 기존 반려동물 제품 디자인은 반려동물보다는 주인인 인간의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 많았어요. 오믈렛은 제품의 사용자인 반려동물과 주인 모두를 고려한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동물의 행태를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고 해요. 또 반려동물을 생각하되, 그들을 키우고 관리할 주인의 편의성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주인이 관리를 잘 해줘야 반려동물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법이니까요.


오믈렛은 자신을 D2C 펫브랜드라고 설명하는데요, 저는 D2C의 원래 뜻인 Direct-to-Customer 보다, 오믈렛의 특징인 Design-to-Customer로 해석하고 싶어요. 제품 디테일 하나하나가 고객인 반려동물과 주인을 고려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최근 오믈렛은 글로벌 브랜딩 에이전시 Ragged Edge에 의뢰하여 리브랜딩을 했습니다. 20년동안 사용해온 다소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로고 디자인에서 탈피하여,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기존 로고 디자인은 간결하고 기능적인 오믈렛 제품 디자인과는 다소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로고 디자인이 별로여도 제품이 훌륭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데요, 저는 반대로 브랜딩이 미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번 리브랜딩 덕분에, 한국에 있는 저와 브랜드비 독자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셈이니까요, 리브랜딩은 언제 하더라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인 셈입니다. 펫팸족 독자 분이 있다면 한 번 직구를 통해서 체험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닭장이 매우 궁금한데,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되는군요...)

2023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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