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Mac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문서 편집 도구도 Mac에 디폴트로 설치된 iWorks 프로그램들을 쓰고 있구요.
그런데 클라이언트의 대다수는 Windows 기반의 Office 프로그램을 쓰고 있어서, 파일 전달 시 문서 포맷 변환이 필요한데요,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 바로 폰트와 레이아웃이예요. 문서포멧 표준화 덕분에 예전처럼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지는 일은 줄었지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디자이너의 성향 상 자동으로 변경된 폰트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디자인은 용납할 수가 없죠. 그래서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pdf로 변환하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반대로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보고자료 편집이 용이한 Office문서 파일을 선호하는지라 종종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발생해요.
솔직히 디자이너들에게 MS Office는 디자인의 불모지와도 같은 SW인데요, (안타깝지만 한컴의 아래아한글은 더 말할 것도 없죠...) 그 이유 중 하나가 기본 폰트가 썩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거의 25년간 MS Office를 써왔지만 기본으로 쓰는 폰트 옵션은 항상 Arial과 돋움, 맑은고딕이었거든요. Office 문서 작업은 소통을 위한 목적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모든 컴퓨터에 깔린 기본 폰트를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MS Office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클라우드 환경의 보편화와 유료 구독 모델의 정착으로 인해 폰트에 힘을 쏟을 환경과 힘이 축적이 된 것이죠.
1. 새로운 디폴트 폰트의 등장
작년 4월 Microsoft가 5개의 새로운 폰트를 발표했어요. 기존에는 디폴트 폰트(문서 작업 시 기본으로 적용되는 폰트)가 Calibri였는데요 (한글 버전은 '맑은고딕'입니다),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폰트들이죠. Bierstadt, Grandview, Seaford, Skeena, Tenorite 중에서 몇 달간 평가를 통해 선정한다고 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확정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새로운 폰트가 추가되었음을 알리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2. 프리미엄 폰트의 추가
최근 Microsoft는 5개의 프리미엄 폰트가 추가되었음을 발표했는데요, 이를 알리기 위해 아름다운 이미지 영상을 만들었어요. 이미지 영상은 Six.N.Five에서 작업했는데, 기본적으로 폰트 관련 영상은 당연히 타이포그래피로 작업했을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마치 서체를 예술작품이자 오브제처럼 표현했어요.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영상을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Microsoft Premium Fonts 영상 보기
그럼 어떤 폰트들이 추가됐는지 알아볼까요? 새롭게 개발된 것은 아니고 기존 유료 서체를 Microsoft가 제휴하여 클라우드 환경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Premium Fonts라고 불리는 이유는 Office365과 같은 유료 구독 서비스에서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패키지 제품은 안 쓴지 오래라 검증은 못 해봤네요.)
Avenir는 지오메트릭 산세리프(Geometric San-serif)를 대표하는 서체인데요, Next가 붙었으니 좀 더 모던하게 다듬었음을 유추할 수 있죠. 지오메트릭 산세리프는 O자가 정원에 가까운 동글동글한 서체예요. 요즘 로고타입에 많이 쓰이는 유행 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로고를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길 여력이 없으시다면, 일단 Avenir Next 서체를 적용해 보세요.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무난한 로고로 사용할 수 있어요.
Biome는 굉장히 젊은 서체예요. 유기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현대적이며 개성적인 산세리프 서체입니다. 획과 획이 만나는 부분의 날카로움을 없앤 것이 특징이예요. (x와 W, k 의 형태를 보시면 이해할 수 있어요.)
Modern Love는 손글씨 폰트에 목말라하던 저에게 단비와도 같은 폰트입니다. Comic Sans가 지겨우셨던 분들, 좀 더 핸드크래프트 작가 같은 느낌을 원했던 분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느낌의 한글은 언제 나오는 거죠? ㅠ.ㅠ
The Hand 역시 Comic Sans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할 수 있어요. Condensed 글자체라서 좁은 공간에 많은 글자를 넣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네요. 커피 네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카페 메뉴판에 적용하면 좋을 듯 합니다.
Walbaum은 클래식한 서체예요. 만들어진지 약 200년이 넘었는데요, 폰트로 만들어지면서 디테일을 다듬고, 폰트 패밀리도 많아졌어요. 클래식한 느낌의 세리프 서체로 Times New Roman만 써왔다면 Walbaum을 시도해보세요. 좀 더 정돈된 이미지를 전달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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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폰트들을 통해 Windows 환경에서도 디자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는데요,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아름다운 문서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아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추가된 폰트들이 다 영문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수십년 간 꿈쩍 않던 무거운 Microsoft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희망을 가져 봅니다. 조만간 다양한 한글 폰트들이 추가되길 기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