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눈에 띄는 문구가 하나 있어요. 바로 "Green is the new black" 라는 문구입니다.
직역하면 "녹색은 새로운 검은색이다" 인데요, 마케팅 측면에서는 친환경과 유기농이 새로운 기준이자 트렌드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브랜딩 업계에서는 말 그대로 녹색이 기존의 가장 대중적인 색상인 검은색을 대체하는 트렌드 색상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사실 브랜드비는 매년 브랜드 로고에 사용된 색상을 분류해오고 있는데요, 그동안 녹색이 가장 많이 사용된 색상은 아니었어요. (검은색이 단연코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은 분명하고, 특이 이는 해외에서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표 색상을 녹색으로 변화한 브랜딩 사례들을 모아 살펴보기로 해요. 왜 기존에 사용하던 대표 색상을 변경했는지, 그리고 새로운 색상 중 하필이면 녹색을 선택했는지 함께 생각해 보아요.
1. 녹색을 대표 색상으로 변경한 사례
스카이라이프는 KT의 위성방송 자회사로서, KT의 대표 색상인 빨간색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OTT의 등장으로 인해 지상파의 시청률이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 위성방송이라고 이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었겠죠. 이번 리뉴얼은 기존 위성방송에 제한되어 있던 이미지를 탈피하고 TV, 인터넷, 모바일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색상은 신뢰와 혁신, 활력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해요.
중고나라는 중고거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중고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있는 요즘, 당근 및 번개마켓이라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브랜드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하락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리브랜딩을 단행했는데요,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오렌지 색상을 포기하게 된 것은 급부상한 경쟁브랜드, 당근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중고나라의 블로그에 따르면 새로운 색상은 ESG경영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글로벌 제약회사인 베링거 인겔하임은 로고 디자인 변화 없이 대표 색상만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색상은 희망과 건강을 대표하는 색상이자, 베링거인겔하임의 '긍정의 정신'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Bolt는 e커머스 결재 플랫폼입니다. 기존의 하늘색은 금융 서비스로서의 신뢰성을 표현했다면, 새로운 색상은 브랜드 네임인 Bolt에 포커싱하여 번개처럼 빠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관련 아티클에 따르면 새로운 색상은 Lightning Yellow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노란색이라기보다는 형광 연두색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녹색으로 변경한 사례 중 하나로 소개드립니다.
국제송금 앱서비스 Wise 역시, 기존의 신뢰를 상징하는 블루에서 녹색으로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녹색은 돈과 진보를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제가 참관했던 POV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같은 핀테크 앱서비스인 Paypal과의 차별화를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2. 母브랜드와 별도 색상 전략으로서 녹색을 채택한 사례
비욘드X는 LS일렉트릭의 통합 브랜드로 산업용 전력 및 자동화 기기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모기업인 LS일렉트릭의 CI 색상과 다른 녹색을 포인트 색상으로 사용한 이유는 혁신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녹색은 신재생 에너지를 대표하는 색상이기도 합니다.
스포츠 패션 브랜드 휠라는 프리미엄 라인인 휠라 플러스를 출시했는데요, 기존 휠라 심볼 마크에 녹색을 적용했습니다. 이 녹색은 휠라의 오리지널리티인 이탈리아의 국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은 전세 사기 위험에 대응하는 지킴중개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모브랜드인 직방의 대표 색상의 오렌지가 아닌 녹색을 선택한 것은 이 지킴중개 서비스가 직방 앱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오렌지 색 기반의 화면에서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개별적으로 브랜드를 접했을 때는 직방과의 연계성을 찾기가 어려운 점이 조금 아쉽네요.
AirAsia Move는 말레이시아의 저가 항공사 AirAsia 통합 여행 서비스 브랜드입니다. 비단 항공권 예매 뿐 아니라 호텔, 렌터카, 보험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AirAsia를 대표하는 빨간 색이 아닌 정 반대의 녹색을 선택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저가 항공에 제한된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처음 론칭 시에는 AirAsia의 로고마크의 색상도 녹색으로 적용했었는데요, 최근에는 다시 본래의 빨간 색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3. 분리독립한 신생 브랜드로서 녹색을 선택한 사례
최근 효성에서 분리한 HS효성은 모브랜드인 효성과 동일한 네이비 색상을 사용하되 새로운 색상인 녹색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효성 브랜드와 다름을 표현했습니다. 녹색은 HS효성이 추구하는 성장과 상생을 상징하는 '가치나무(Value Tree)'의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Kenvue는 존슨앤드존슨의 컨슈머 헬스 사업 부문이 분리독립한 새로운 법인입니다. 사실 그동안 헬스케어 분야의 대표적인 색상은 피를 상징하는 빨간 색이었는데요, Kenvue가 녹색을 선택한 이유는 위의 베링거인겔하임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Solventum은 3M의 헬스케어 사업부가 분사하여 탄생한 기업입니다. 기존 3M이 사용하던 화학의 대표 색상 빨간 색에서 탈피하여 역시 새로운 녹색을 선택했는데요, Solventum의 녹색은 생명, 성장, 안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브랜드 색상을 트렌드 색상인 녹색으로 변경한 사례들을 살펴봤어요.
어떤가요? 여러분은 "Green is the new black" 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사실 모든 색상은 고유의 좋은 의미를 갖고 있어요. 최근 도외시되는 경향의 빨간 색도 강렬함, 열정, 따스함 등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만, 트렌드라는 것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더라고요. 최근 녹색이 핫한 색상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기후위기의 심각성, 건강을 중요시하는 라이프스타일 등 거시적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와 그다지 상관없는 브랜드가 단지 트렌드라는 이유만으로 녹색으로 변경하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예요. 면밀한 검토와 고민을 거친 브랜딩 전략으로써 브랜드 대표 색상 선정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